"최소한 경기장에서는 독한 선수 되겠다…은퇴하지 않고 2028년 LA 대회 도전"
(파리=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주정훈(30·SK에코플랜트)은 준결승에서 패한 뒤, 동메달 결정전 출전을 포기하려고 했다.
3년째 주정훈과 동고동락하는 김예선 감독은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고 주정훈을 다그쳐 경기에 내보냈다.
그렇게 2024 파리 패럴림픽 동메달을 딴 주정훈은 은퇴하려던 생각도 접고,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에 다시 도전하기도 했다.
3일(이하 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주정훈은 "경기 다음 날 아침까지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동메달도 값지다는 생각이 들어 만족한다"며 "이제는 다음에 있을 경기에서 더 잘 뛰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 독한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주정훈은 1일 열린 파리 패럴림픽 태권도 남자 80㎏급(스포츠등급 K44)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2021년에 벌인 2020 도쿄 대회에 이은 2회 연속 동메달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8강전 니콜라 스파히치(세르비아)와 경기 중 상대 무릎에 왼쪽 골반을 맞아 부상을 당하고도 3위에 올랐다.
주정훈은 시상식에서 다른 메달리스트들의 부축을 받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사실 주정훈은 준결승에서 패한 뒤 통증과 아쉬움 탓에 동메달 결정전 출전을 포기하려고 했다.
주정훈의 마음이 약해질 것을 예상했던 김 감독은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며 불호령을 내렸다.
김 감독은 "준결승에서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 너무 아쉽게 패해 나도, 주정훈도 정신적으로 흔들렸다"며 "예상대로 주정훈이 '포기한다'고 말해, 강하게 대처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주정훈을 세심하게 살피는 김 감독이지만, 그의 마음이 약해질 때면 따끔하게 혼을 낸다.
주정훈은 세계랭킹 1∼8위만 출전한 지난해 그랑프리 파이널 결승에서도 경기 중 부상을 당했다.
경기 중반에 통증을 느껴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고 결국 졌다. 당시에도 김 감독은 "넌 선수의 마인드가 없다"고 질타했다.
주정훈은 "내 입장에선 몸을 지키는 게 먼저였고, 감독님이 모질게 군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생각해보면 감독님의 말이 이해되곤 했다"며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왔는데 잘 대처해주신 거 같다"며 고마워했다.
파리 패럴림픽에서 주정훈을 다그친 김예선 감독 덕에 주정훈은 빛나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은퇴하려는 생각도 접었다.
주정훈은 파리 패럴림픽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는 "도쿄와 파리에서 두 번 다 패자부활전을 경험했다. 심적으로 정말 힘들었다"며 "내가 '큰 무대 체질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들었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주정훈의 은퇴도 만류했고, 주정훈은 4년 뒤 LA에서는 '독한 마음'으로 금메달에 도전하기로 했다.
주정훈은 "장애가 있으면 편의를 봐주는 것에 익숙해지니 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국제대회에서 만난 외국 선수들은 장애가 있어도 정신력이 강했다"며 "적어도 경기나 대회를 앞두고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 그런 독한 선수가 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정신적으로 흔들릴 때 빨리 털고 일어나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예전보다 좋아졌다. 선수 본인은 자신을 낮추지만 이 체급에서 가장 경기력이 좋은 선수"라고 주정훈을 칭찬하며 "패럴림픽 기준으로는 아직 어린 선수인데, 자신감을 더 가지고 운동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더 보여줄 모습이 많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의 패럴림픽 태권도 1호 메달리스트인 주정훈이 독하게 마음먹고 2028년 LA를 바라본다.
김 감독은 "주정훈이 도전을 이어간다면 나도 함께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주정훈은 만 2세 때 할머니 댁 소여물 절단기에 오른손을 넣었다가 장애인이 됐다.
이후 할머니 김분선 씨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치매를 앓다 2021년에 별세했다.
주정훈은 이번 파리 대회를 앞두고 할머니 묘소를 찾아 메달과 평소 좋아하던 고기반찬을 가지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할머니가 건강하셨을 때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이제는 애정 표현을 해보려고 한다.
주정훈은 "현지 사전캠프에 와서 경기 당일까지 부모님과 연락을 단 한 통만 했다. 경기 전에 괜히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나도 표현을 잘 못하는데, 부모님도 연락을 주저하신다"며 "경기 뒤에 연락드렸는데 아버지는 '아픈 데는 괜찮은가. 마음을 잘 다스리고 남은 기간 좀 쉬고 즐기다 돌아오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들, 장하다. 아픈 데는 없니. 푹 쉬고 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사실 부모님이 내 자랑을 여기저기서 많이 하시더라. 내가 성장하는 동안 남부럽지 않게 모든 걸 지원해주셨다"며 "자랑스러운 아들이 돼서 부모님과 오래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여행도 하고 싶다. 부모님, 사랑합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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