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에 만난 '겨울나그네'…70분간 읊은 슈베르트의 시

2 months ago 2
임순현 기자

독일 성악가 베냐민 아플 첫 내한공연…사이먼 레퍼 피아노 연주도 감동

'겨울나그네'를 부르는 베냐민 아플

'겨울나그네'를 부르는 베냐민 아플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3대 연가곡 중 하나인 '겨울나그네'가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을 달랬다.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세예스24문화재단의 '2024 여름에 만나는 겨울나그네'는 '시와 음악이 결합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독일 가곡의 진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한 독일 출신 바리톤 베냐민 아플은 약 70분간 한 번도 쉬지 않고 '겨울나그네' 24곡 전곡을 불렀다. 아플은 고독과 안식,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감정을 교차해가며 시를 읊듯 명곡을 완주했다.

독일과 유럽에서 활동하는 아플은 슈베르트 가곡을 주로 부르는 성악가다. 서정적이면서 순간순간 강렬함이 느껴지는 그의 음색은 특히 '겨울나그네'와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4 여름에 만나는 겨울나그네' 공연 모습

2024 여름에 만나는 겨울나그네' 공연 모습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쓸쓸하고 어두운 단조 풍의 1∼4번 곡으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 아플은 5번째 곡 '보리수'에서 그가 왜 '겨울나그네'의 최고 권위자인지를 증명했다. 국내 음악 교과서에 실려 우리에게도 친숙한 '보리수'는 차분하게 시작하다가 곡 중간 격정적인 분위기로 급하게 바꿔 불러야 하는 쉽지 않은 곡이다. 아플은 마치 친구에게 말하듯 자기 사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다 갑자기 격정에 휩싸이는 느낌으로 곡을 표현해냈다. 연주자와 관객이 대화하는 듯한 아플의 이런 창법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순간이었다.

13번째 곡 '우편마차'는 사랑하는 이의 편지를 기다리는 들뜬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무대였다. 아플은 곡 말미에 편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낙담하는 감정까지 과하지 않게 표현했다.

'겨울나그네'를 부르는 베냐민 아플

'겨울나그네'를 부르는 베냐민 아플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무덤으로 나의 길 나를 이끌었네'로 시작하는 21번째 곡 '객관'에서는 31세 나이로 요절한 슈베르트의 처연함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아플의 수심 가득한 표정이 공연의 몰입감을 더욱 높였다.

앙코르로 부른 한국 동요 '오빠생각'까지 처음 만난 한국 관객을 대하는 그의 진지함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협연자로 나선 영국 피아니스트 사이먼 레퍼의 피아노 선율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다. 피아노를 통해 주인공의 내면과 노래의 배경, 분위기를 표현하는 슈베르트의 가곡은 피아노 연주가 성악가만큼 중요하다.

레퍼는 수시로 아플을 바라보며 노래 가사에 피아노 소리를 덧입혔다. 노래를 부르는 아플의 표정을 그대로 따라 하며 연주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피아니스트 사이먼 레퍼

피아니스트 사이먼 레퍼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다만 독일어로 부르는 곡 특성상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쉽지 않은 무대였다. 공연 시작 10분 만에 객석 여기저기서 집중하지 못하는 관객이 눈에 띄었다. 휴대전화 알람과 물건 떨어뜨리는 소리까지 더해져 공연장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도 했다.

아플이 노래를 끝내자마자 터져 나온 박수도 아쉬움을 남긴다. 아플은 70분간 쌓아온 감정의 층을 정리하지 못한 채 굳은 얼굴로 객석의 환호에 답해야 했다.

공연 시작 전 해설자가 처연한 분위기의 곡 특성을 감안해 노래가 끝나면 잠시 침묵을 즐겨달라고 요청했지만, 관객 대부분이 이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던 탓이다.

해설자로 나선 김성현 기자

해설자로 나선 김성현 기자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yu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06 15:42 송고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