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내세운 광주비엔날레…다양한 목소리로 공간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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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빌리온 규모 확대…"세련됐지만 전체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미흡" 평가도

전시 설명하는 니콜라 부리오 감독

전시 설명하는 니콜라 부리오 감독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광주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프레스 오픈 행사가 열려 니콜라 부리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 전시 설명을 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양림동 일대에서 열린다. 2024.9.6 minu21@yna.co.kr

(광주=연합뉴스) 황희경 형민우 기자 = 2024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6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86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30주년을 맞은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프랑스 파리의 유명 현대미술관인 팔레 드 도쿄의 공동설립자 중 한 명이자 '관계 미학' 이론으로도 유명한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를 예술감독으로 내세워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프랑스인 예술감독은 한국의 '판소리'를 전시의 핵심 주제로 제시했다. 다만 부리오 감독은 우리에게 익숙한 판소리의 형식보다는 많은 사람이 모인 공간(판)에서 부르는 노래(소리)라는 판소리의 개념을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생태, 비인간, 여성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룬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판)을 이야기한다.

부리오 예술감독은 개막 기자회견에서 "공간은 현대의 사회, 정치, 군대 등 모든 것이 모이는 곳이고 국경도, 장벽도 공간의 개념"이라면서 "공간은 모든 것을 연결하는 매듭"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시는 각 작가가 구체적으로 공간을 탐색하고 연구하는 양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미술의 향연

현대미술의 향연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광주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내외신 기자 초청 프레스 오픈 행사가 열려 취재진들이 작품을 보고있다. 광주비엔날레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양림동 일대에서 열린다. 2024.9.6 minu21@yna.co.kr

◇ 키워드는 '소리'와 '공간'…파빌리온 31개국 참여

전시는 '부딪힘 소리', '겹침 소리', '처음 소리' 등 소리 유형에 따라 3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부딪힘 소리'를 주제로 삼은 전시에서는 인간 활동으로 가득 차 사람과 사람, 종과 종 사이 관계가 고밀도화한 공간을 소리와 이미지로 보여준다. 나이지리아 도시 거리의 여러 소리를 포착한 에메가 오그보의 오디오 작업으로 시작하는 전시장에는 여러 작품이 내는 소리가 뒤섞이며 묘한 불협화음으로 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표현한다.

'겹침 소리'를 내건 3전시실에는 맥스 후퍼 슈나이더의 대규모 설치 작품 '용해의 들판'에 관객들의 발걸음이 쏠렸다. 그는 그라피티로 뒤덮인 잔해 위로 폐기물에서 나오는 것 같은 검은 물이 쏟아지는 인공 폭포, 구리 도금된 식물 등으로 세기말 정원 같은 공간을 꾸몄다.

작가가 창조한 생태계

작가가 창조한 생태계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광주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내외신 기자 초청 프레스 오픈 행사가 열려 취재진들이 맥스 후퍼 슈나이더의 '용해의 들판'을 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양림동 일대에서 열린다. 2024.9.6 minu21@yna.co.kr

'처음 소리'를 주제로 한 4, 5 전시실에는 이산화탄소, 환경호르몬, 바이러스 등 비인간이 주체가 되는 세계를 다룬 작품들이 놓였다.

마치 동굴처럼 조성된 4전시실에서는 동굴 벽화 같은 도미니크 놀스의 대형 그림이 전시장 전면 벽을 채운 가운데 하얀 소금 사막을 형상화한 비앙카 봉디의 설치 작품이 놓였다. 관객들은 신발을 벗고 작품 속으로 들어가 사막을 거닐며 비현실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5전시실에서는 레이저 커팅된 600개의 개미 형상이 나무와 구리, 색지로 조성된 풍경 곳곳에 자리 잡았다. 미리암 미힌두의 '여왕 없는 개미들'이라는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여왕이 없는 개미 사회', 즉 다음 세대가 없는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신비로운 빛

신비로운 빛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광주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내외신 기자 초청 프레스 오픈 행사가 열려 마르게리트 위모의 '휘젖다'를 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양림동 일대에서 열린다. 2024.9.6 minu21@yna.co.kr

보이지 않는 공간의 풍경을 소리로 그려내는 작업들도 있다. 캐나다 출신의 사디아 미르자는 빙하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려준다. 그는 남극의 빙하가 10∼14개월 동안 이동하면서 내는 소리를 30초에 압축해서 들려주는 등 공간 음향 설치 작업을 통해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있음을 소리로 경험하게 한다. 권혜원은 음향 탐사 도구로 제주 서부 용암동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소리로 이야기한다. 동굴에서 박테리아가 번식하는 소리, 곰팡이가 죽은 노루를 분해하는 소리 등 보이지 않는 풍경을 소리로 그려내는 작품 '포털의 동굴'이다.

비엔날레 전시관 외에도 광주 일대 곳곳을 전시장으로 활용했던 것과는 달리 올해는 양림동 일대에 외부 전시 공간을 집중했다. 호랑가시나무폴리곤, 옛 파출소, 빈집 등 양림동 전시 공간 8곳에는 소리가 강조되는 작품들을 주로 배치해 '소리숲'으로 꾸몄다.

부드러운 폐허

부드러운 폐허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광주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내외신 기자 초청 프레스 오픈 행사가 열려 취재진들이 필립 자흐의 '부드러운 폐허'를 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양림동 일대에서 열린다. 2024.9.6 minu21@yna.co.kr

일종의 국가관 개념인 파빌리온 전시는 규모가 커졌다. 도입 첫해인 2018년 3개 관으로 시작했던 파빌리온 전시는 지난해 9개국이 참여한 데 이어 올해는 31개국에서 국가와 미술 기관이 참여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 설치된 인도네시아 파빌리온에서는 즉흥 공연이 펼쳐졌고 양림미술관에 마련된 캐나다 파빌리온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북극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누이트 작가들이 광주 지역 작가들과 교류하며 만든 결과물을 선보인다.

베일 드러난 광주비엔날레

베일 드러난 광주비엔날레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광주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내외신 기자 초청 프레스 오픈 행사가 열려 취재진들이 작품을 보고있다. 광주비엔날레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양림동 일대에서 열린다. 2024.9.6 minu21@yna.co.kr

◇ "스타일이 앞선 전시…개별 작품만 돋보여"

평단에서는 전시장 구성이나 작품 배치 등 형식적인 면에서는 호평이 많았지만, 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가 아닌 비엔날레라는 행사 성격을 고려하면 내용은 아쉽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개별 작품 하나하나는 돋보였지만,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로 엮는 데는 미흡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 평론가는 "세련된 전시였지만 스타일이 너무 앞서 내용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며 "특히 전시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갤러리 기획자는 "비엔날레가 아닌 갤러리에 그대로 가져와 전시해도 될 것 같은 구성이었다"고 평했다.

상업 행사인 아트페어 아트바젤에서 실험적인 작품만을 따로 모아 소개하는 '언리미티드' 섹션에 빗대 '2000년대 초반 아트바젤 언리미티드 섹션을 보는 것 같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광주비엔날레 프레스 오픈

광주비엔날레 프레스 오픈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광주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이 프레스 오픈 행사에 참여한 내외신 기자이 작품을 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양림동 일대에서 열린다. 2024.9.6 minu21@yna.co.kr

광주라는 지역의 역사적 측면을 강조한 작품들이 역대 광주비엔날레에 비해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았던 데 주목하는 시각도 있었다.

한편 이번 전시작품 중에는 최근 대마 흡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A 작가의 작품도 포함됐다. A작가는 배우 유아인씨와 대마를 흡입한 혐의로 이달초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광주비엔날레를 주관하는 광주비엔날레재단은 개막식 하루 전인 지난 5일 법률가가 참석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어 작품 전시 여부를 논의했지만, 법정 구속된 유씨와는 달리 A씨의 범행 정도가 작품을 철거할 정도로 무겁지 않다고 보고 전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리오 예술감독 역시 A씨의 작품이 전체 전시 구성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판단해 전시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비엔날레에 어떤 작품이?

광주비엔날레에 어떤 작품이?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광주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내외신 기자 초청 프레스 오픈 행사가 열려 취재진들이 작품 설명을 듣고있다. 광주비엔날레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양림동 일대에서 열린다. 2024.9.6 minu21@yna.co.kr

파빌리온 전시에서는 미로센터에 마련된 이스라엘 문화기관인 CDA홀론 전시를 두고 일부 문화예술 단체가 보이콧에 나섰다. '팔레스타인 문화연대'(KCAP)는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전범국 이스라엘의 문화기관 전시를 용인했다"고 비판하면서 CDA 홀론 파빌리온의 모든 전시와 프로그램을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

zitron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08 18:0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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