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재 증명한 정경화의 'L자 연주'…후배 이끌며 브람스·프랑크 완주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일흔이 넘은 거장이 이끄는 대로 후배 연주자가 뚜벅뚜벅 걸어가니 브람스와 프랑크의 음악이 저절로 완성됐다.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6)와 피아니스트 임동혁(40)의 협주를 두고 나온 말이다.
2017년 실내악 그룹 '앙상블 디토'의 1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를 함께 연주했던 정경화와 임동혁은 7년 만에 브람스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로 호흡을 맞췄다.
한국 클래식의 선구자인 정경화가 7년 전 기억을 되살려 직접 이번 공연의 파트너로 임동혁을 선택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첫 곡은 브람스가 1887년 여름휴가 때 완성한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라단조'였다. 빠르게 연주되는 1악장과 진중하고 천천히 연주되는 2악장의 뚜렷한 대비가 흥미로운 곡이다.
본래 피아노가 상대적으로 더 화려하게 처리된 작품이지만, 이번 연주에서는 정경화의 바이올린이 더 큰 울림을 줬다. 고령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여전히 오른팔을 'L자' 형태로 유지하며 공연장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활을 그었다. 정경화의 절도 있는 바이올린 선율과 이를 받쳐주는 임동혁의 피아노 연주에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인터미션(중간 휴식) 후 이어진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 무대에서도 정경화와 임동혁은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였다.
특히 '빠르게 몰아치는' 2악장에서 정경화의 능숙한 바이올린 리드와 선배의 배려 덕에 긴장이 풀린 임동혁의 신들린 듯한 타건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냈다. 객석에선 두 사람의 속사 연주에 빠져든 관객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몰입감을 준 무대였다.
시종일관 여유 있는 미소로 관객과 수시로 소통하며 공연하는 정경화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관객들이 악장 사이에 참았던 기침을 터뜨리자, 정경화는 임동혁에게 신호를 보내 연주를 잠깐 멈추고 기다려주는 배려심을 보였다. 또 임동혁이 유독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자, 먼저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모습도 관객에게 감동을 줬다.
한편 이날 공연에선 당초 정경화가 자신의 대표곡인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라단조'를 1부 첫 곡으로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연주자 개인 사정으로 공연 시작 전에 프로그램이 변경됐다. 정경화 대신 임동혁이 먼저 무대에 올라 슈베르트의 '즉흥곡 D. 899' 1번과 3번을 연주했다.
hyu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07 09:1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