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서 가장 잘한 게 씨뿌리고 가꾼 일…풍요로운 터전 돼"
(세종=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저는 60년 동안 나무에 예금을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여윳돈이 생기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나무를 사왔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무 은행 이자가 일반 은행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나요? 자연은 거짓말하지 않고 주인의 정성만큼 보답합니다."
세종시 전동면에 위치한 베어트리파크를 설립한 송파 이재연 선생은 젊은 시절부터 정원을 가꾼 것으로 유명하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1980∼1990년대 금성통신 사장, 금성사 사장, LG신용카드 부회장, LG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인물로, 가진 돈을 대부분 수목원 조성에 쏟아부었다.
그를 지난 12일 베어트리파크 온실 정원에서 만났다.
이재연 선생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나무에 물과 거름을 주고 해충을 잡아주며 사랑을 줬더니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이 됐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일생을 통틀어 가장 잘한 일이 씨를 뿌리고 가꾼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주말이면 수목원을 찾아 일구는 즐거움으로 가꾸기 시작한 이곳이 지금은 풍요로운 터전이 됐다"고 말했다.
베어트리파크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곰과 나무가 어우러진 수목원이다.
33만여㎡ 부지에 오랜 세월 정성스럽게 가꾼 1천여종·40만여점의 꽃과 나무, 150여 마리의 반달곰과 함께 공작, 꽃사슴 등도 만날 수 있다.
세종시(당시는 연기군 전동면)에 터를 잡은 이유는 누나와 매형이 이 지역에 살았는데 그때 인상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서른 살이 조금 넘었을 때 아내와 함께 경기도 의왕에 농장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80년대 의왕시 도시개발로 농장이 수용되면서 여기에 땅을 사 수목원을 만들었다"며 "당시 화물차 1천대 분량의 나무와 화초를 의왕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설명했다.
그때부터 주중에는 서울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면 베어트리파크를 찾아 나무를 심고 가꿨다.
지인에게 반달곰 5마리를 선물 받아 키우기 시작한 게 현재는 150마리까지 늘었다.
곰과 나무가 어우러진 이른바 '곰이 있는 수목원'이 된 배경이다.
요즘에도 일주일에 4일은 베어트리파크에서 나머지 3일은 서울 자택에서 생활한다.
그는 "오전 8시 직원들과 함께 정원 가꾸는 일을 시작해 오후 5시에 퇴근한다"며 "하루 종일 일을 하기 때문에 잠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고, 단잠을 자기 때문에 아침에도 개운하다"고 말했다.
그는 1931년생으로 올해 93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정정했고 발음도 또렷했다.
직원이 인터뷰에 대비한 자료를 줬지만 1시간 이상 계속된 인터뷰 내내 한 번도 자료를 들춰 보지 않는 모습이었다.
건강 비결을 묻자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잘 자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굳은살 가득한 손바닥과 변형된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하루 종일 나무를 심고 화초를 가꾸면서 생긴 '영광의 상처'라며 활짝 웃었다.
이재연 선생이 소중히 가꾼 비밀의 정원을 일반에 공개한 것은 2009년 5월이다.
그는 "나무를 심기 시작한 지 25년 이상 지나니 10만평 부지에 나무가 꽉 찼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며 "나 혼자만 보는 게 아까워 모든 사람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로 하고 공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베어트리파크는 최근 분재 전시회를 시작했다.
이재연 선생이 평생 모으고 가꾼 분재 450여점 가운데 최상의 작품을 골라 일반에 공개하는 행사다.
이번에 공개되는 분재 가운데 일부는 관리비만 연간 수백만원이 넘는 최상급이다.
그는 "분재는 키우기가 매우 까다롭고 어렵다"며 "나 혼자 보기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전시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2026년 세종시에서 열리는 국제정원도시박람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박람회의 성공을 위해 베어트리파크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게 내 생각"이라며 "수목원을 정성껏 가꿔 박람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jkha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15 06: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