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정 협의체 제안에 "2025년도 증원 백지화부터" 맞서
오늘 수시모집 시작돼 증원 백지화는 사실상 '불가능'
자칫하면 의사들 목소리만 배제될 수도…"대화 참여해야" 주장도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권지현 기자 = 정치권을 중심으로 의대 정원 증원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이 임박했으나 의사 사회에서는 여전히 2025학년도 증원부터 백지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 증원되면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인데, 2025학년도 대학 수시 모집 원서 접수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계속 백지화를 주장하면 '역풍'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의료계 일각에선 불가능한 주장을 고집하기보다는 협의체를 통해 대화에 참여해야 의사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 협의체 참여 제안에 "내년 증원 백지화부터" 맞서
9일 의료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두고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의료계가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협의체 참여의 선결 조건으로 2025년과 2026년 의대 증원 백지화를 내세우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2025년과 2026년 의대 증원 계획을 백지화하고, 2027년 정원부터 재논의해야 한다"며 "정말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 합당하다면 2027년이나 그 이후부터 증원을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도 정원은 유지하고, 2026년 이후 증원을 원점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도 계속해서 의료계가 조건 없이 대승적으로 협의체에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까지 포함된 협의체이므로 의료계 입장에서 충분한 발언과 논의가 보장된 구조"라며 "지금은 해결을 위한 중재와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여야는 현재 여야의정 협의체의 4자 참여 숫자 등을 비롯한 구성 방식을 논의 중으로, 협의체 출범이 임박한 상황이다.
더욱이 이날은 2025학년도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시작된 날이다.
내년도 의대생 모집을 위한 절차가 이미 시작된 것으로, 의협 등 의사 단체들이 주장하는 '2025학년도 증원 백지화'는 사실상 이룰 수 없게 된 셈이다.
◇ 의협은 물론 전공의들도 '강경'…"의사가 주체 아니면 불참"
법정 의사단체인 의협을 중심으로 백지화 없이는 어떤 대화의 장에도 나서지 않겠다는 게 의사 사회의 주된 목소리다.
특히 전공의, 의대생 등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는 협의체에 참여한다고 해도 결국 정부 입맛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견해가 득세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지방의 전공의 A씨는 연합뉴스에 "협의체에 의료계의 뜻이 잘 반영될지 의문을 가지는 분위기"라며 "정부가 여론전을 하는 것이라고 불신하는 이들이 다수로, 의사가 주체가 되는 협의체가 아니면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지방에서 수련한 전공의 B씨는 "정부와 의료계가 합의해야 한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사직한 전공의들은 병원 취직이 아니더라도 따로 하는 경제활동이 거의 정착된 상태라 정부가 생각하는 것만큼 급박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 C씨는 "전공의나 의대생들은 협의체가 대단한 제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정부가 약속을 어긴 선례가 많은 만큼 협의체 제안도 공수표 아니냐', '이전 정부의 행보와 다른 바를 못 찾겠다' 이런 반응이 주된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전공의들은 일종의 요식행위를 한 번 더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정도로 상황을 분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휴학 중인 한 의대생도 "전혀 변한 게 없다"고 의대생 사회의 분위기를 전하며 "2027년 정원부터 논의하자는 의협 제안도 전공의들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이대로면 실리도, 명분도 없다"…내부서 대화 참여 촉구 주장 나와
소수 의견이지만, 의사들도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도 한 대표가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한 당일 의대 증원의 재검토를 요청하면서도 "여당 대표가 여야의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국민들과 의료현장의 의견도 충분히 들어야 한다고 밝힌 것은 긍정적"이라고 환영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공의 D씨도 "전공의들이 바라는 게 의료 파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합리적인 논의를 바라는 거라 협의체 구성 자체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미 진료지원(PA) 간호사 합법화,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등 정부 정책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점을 고려했을 때 이대로 계속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조금의 실익도 챙기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병원장은 "대화에 참여하지 않을수록 앞으로 의사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미 여러 정책이 진행 중인데, 증원에만 매몰돼 있느라 다른 것들은 다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걸 일방적으로 이루는 건 불가능한 얘기"라며 "일반적인 노동조합도 파업 시에는 막판에 가서 조금씩 양보하며 사측과 합의하고 그다음을 노리는데, 의사 단체들이 증원 백지화를 계속 주장하면 마지막엔 실리를 엄청나게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대학병원을 제외한 다른 병원들에서는 그동안 상급종합병원에 가던 환자들이 많이 찾아와서 (좋으면서도) 표정 관리 중"이라며 "결국 손해는 전공의와 의대생들만 보게 될 텐데, 선배 의사들이 대화에 참여해 정부와 대거리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soh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09 11:5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