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근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이 앞다퉈 대출 문턱을 높이는 바람에 대출 실수요자가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자 당국은 은행권의 '기계적인 대출 제한'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실수요자 보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가계대출 급증에 놀란 당국이 대출 규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다가 이제 실수요자 피해를 걱정하니 은행권에선 볼멘 목소리가 나올만하다. 정부가 대출 규제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금융권의 주택 관련 대출 규제는 일단 확산하는 모양새다. KB국민은행이 이달 9일부터 1주택 세대의 수도권 주택 추가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제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5일 전해졌다. 신용대출도 연 소득 범위내에서만 해주기로 했다. 앞서 우리은행도 이달 같은 날부터 같은 조치를 한다고 발표했다. 수도권 전세자금 대출도 전 세대원이 주택을 보유하지 않은 무주택자에게만 해준다. 은행권뿐 아니라 삼성생명도 3일부터 기존 주택 보유자에 대한 수도권 주담대를 제한하고 있다. 급증세가 꺾이지 않는 가계대출을 관리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지난 8월 한 달 동안에도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은 9조6천259억원이 늘었다. 월간 기준 사상 최대 증가 폭이었다.
문제는 은행권이 대출 규제 조치를 쏟아내면서 실수요자들이 적잖은 혼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1주택자의 투기 목적이 아닌 정상적인 주택거래 수요까지 틀어막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현장 간담회에서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주는 대출 정책을 점검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원장은 "1주택자도 자녀 결혼 목적이나, 자녀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집을 얻어야 한다거나 다양한 수요가 있다"면서 기계적으로 대출을 금지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런데 은행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투기 목적과 실수요 대출을 명확하게 가르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날 "어제 금감원장의 발언으로 내부적으로 다시 규제를 완화해야 하나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고 한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과 연초에 은행권을 향해 '상생 금융'을 강조했다. 이에 은행들은 일제히 대출금리 인하로 화답했다. 그것이 비정상적인 가계 대출 급증세가 이어진 한 요인이 됐다. 당국은 지난 7월 대출 확대로 인한 가계 부채 문제를 지적했고, 그 이후로 최근 두 달 새 20여차례나 은행 금리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급기야 지난달 25일에는 이 금감원장이 또다시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고 메시지를 냈다. 결국 은행권이 금리 인상이 아닌 다른 대출 규제 조치에 나섰고, 그것이 실수요자 '대출 절벽' 우려를 부른 셈이다. 당국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대출 억제를 금융권에 주문하면서 그것이 불러올 부작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대출 규제를 두고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당국의 메시지에 은행들의 대출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부는 세심하고 일관된 정책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05 15:5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