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 때 국민연금 만들어…DJ정부, '보험료율 3→9% 인상' 후 26년째 동결
2007년 '소득대체율 60→40%' 마지막 개혁…이명박·박근혜 정부선 논의도 없어
문재인 정부는 복수안 냈다가 철회…"선거 닥치기 전 내년 초까지 '개혁 골든타임'"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정부가 4일 21년 만의 단일안을 담은 정부 차원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개혁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안 발표로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과 시민사회, 전문가 사이에서 찬반 여론이 분분한 만큼 개혁이 결실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연금 개혁은 그동안 1998년 국민의 정부와 2007년 참여정부에서 1차례씩, 모두 2차례 성사됐다. 이후에는 개혁을 위한 제대로 된 시도조차 나오지 못했다.
개혁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국민연금 개혁이 '명분'은 지대하지만, 민생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치적 역풍이 우려되는 '독이 든 성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기금 고갈과 노인복지 파탄을 막을 '마지막 골든타임'이 다가오고 있다며,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국민연금, 전두환·노태우 정부 만들어…DJ·노무현 때 '1·2차 개혁'
5일 정부와 연금 전문가 등에 따르면 한국에서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이 만들어진 것은 1988년으로,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나 일본(1961년 도입)보다 한참 늦다. 전두환 정부가 만들고, 노태우 정부가 도입했다.
첫해 보험료율은 3%, 소득대체율은 70%였다. 낮은 보험료율과 높은 소득대체율은 가입자를 끌어모아 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애초에 '저부담·고혜택'이라는 지속가능하지 못한 구조로 출발한 탓에 개혁은 필연이었다.
첫번째 개혁은 김대중 대통령 재임 중인 1998년 이뤄졌다. 보험료율이 지금과 같은 9%로 인상됐고, 소득대체율은 60%로 낮아졌다. 이대로라면 국민연금 기금이 2030년에 고갈된다는 암울한 전망과, 외환위기라는 위기 상황이 개혁 추진의 동력이 됐다. 당시 여야는 합의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처음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가 가입 대상이었던 것이 5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농어촌 주민 등으로 넓어지다가 1999년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와 도시 자영업자까지 확대됐다.
가입 대상이 이렇게 전 국민으로 확대된 것 역시 1차 개혁의 성과다.
2차 개혁은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진통 끝에 성사됐다. 2003년 제1차 재정계산에서 지금대로라면 2047년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옴에 따라 개혁 논의에 착수했다.
정부는 2003년 소득대체율 50% 인하와 보험료율 15.9%(2030년까지) 상향을 안으로 제시했다. 이번에 발표된 안은 이때 이후 21년 만에 나온 정부 단일안이다.
2003년 정부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이후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도해 같은 안을 가지고 다시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정부안은 부결됐고, 보험료율 인상 없이 소득대체율만 40%까지 하향(2028년까지)하는 내용을 담은 여야 합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유 장관은 정부안 부결에 따른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못한 정부들…文정부, 개혁안 내놨다가 결국 철회
2차 개혁 이후 한동안은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변변한 시도조차 나오지 못했다.
보험료가 늘거나, 연금 수령액(소득대체율)을 줄이는 방식의 개혁에 대해 국민의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어 정부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감수하며 개혁의 깃발을 들 용기를 내지 못한 탓이다.
직전에 2차 연금개혁이 있었던 까닭에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국민연금 개혁 관련 논의가 적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기초연금 개편에 공을 들였다.
박근혜 정부는 여야와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가입자와 노동자 대표 등으로 대타협기구를 꾸려 2015년 '연금지급율 단계적 인하, 지급개시연령 연장, 연금액 한시 동결'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초연금 대상 확대 추진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인 끝에 국민연금 개혁은 건드리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앞선 두 정부와 달리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시도는 있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2018년 ▲ 현행 유지(소득대체율 40%, 보험료율 9%) ▲ 현행 유지하되 기초연금 40만원으로 인상 ▲ 소득대체율 45%로 상향, 보험료율 12%로 인상 ▲ 소득대체율 50%로 상향, 보험료율 13%로 인상 등 4가지 복수안을 정부 안으로 국회에 제출했다가 결국 철회했다.
안을 4가지나 제시했음에도 '재검토'를 결정하며 밝힌 이유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 '지속가능성과 공정성 제고,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위해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한 연금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으며 국민연금 개혁에 공을 들였다.
출범 초기부터 교육, 노동과 함께 연금을 3대 개혁 중 하나로 꼽으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작년 국회에 제출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 개혁 방안을 담지 못했다가 이번에 뒤늦게 모수와 구조 개혁 모두를 담은 개혁안을 내놨다.
◇ 26년째 보험료율 동결·17년째 개혁 무산…현정부 '마지막 골든타임'
개혁이 이뤄지지 못하는 동안 보험료율은 1998년 이후 26년째 '동결' 상태다. 진통 끝에 국회에서 보험료율 인상이 결정돼 내년부터 보험료율이 오른다면 27년 만에야 9%를 벗어나는 셈이다.
더구나 2007년 소득대체율 하향이 이뤄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올해까지 17년째 실질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개혁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정부안을 토대로 사회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26년에는 지방선거, 2027년에는 대선이 있어 선거의 영향을 받기 전인 올해 말 내년 초가 이번 정부에서 마지막으로 국민연금 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골든타임'으로 여겨진다.
최영준 연세대(행정학) 교수는 "책임감 있는 국회의원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정부가 준 안을 논의해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며 "그 결정에 대해서는 만약에 행정부가 낸 안과 조금 다르다 하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연금 관련 시민단체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논평에서 이제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발표됐으니 이를 토대로 사회적 논의, 국회 심의가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개혁은 '재정 안정'과 '보장성 강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시급한 과제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작년 3월 발표한 제5차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 제도가 현행을 벗어나지 않으면 2041년 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2055년에는 적립기금이 소진되는 암담한 결과를 맞는다.
적립기금 없이 매년 보험료 수입만으로 국민연금을 운영할 경우 필요한 보험료율을 보여주는 '부과방식 비용률'은 2078년에는 35%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국민연금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소득의 3분의 1 이상'을 보험료로 내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얘기다.
한편으로는 소득대체율이 계속 하향 조정되면서 보장성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해법 모색도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국가 간 비교 시 기준으로 삼는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AW값)을 적용하면 한국 평균소득 가입자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32.9% 수준에 그친다. 이는 OECD 평균(42.3%)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국내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2022년 기준 38.1%로, OECD 평균 14.2%(2020년 기준)를 크게 웃돌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회가 '재정 안정'과 '보장성 강화'의 적절한 균형을 맞춘 타협안을 만들어 반드시 골든타임 내에 연금개혁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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