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2026년까지 백지화하고 2027년 논의하자" vs 대통령실 "논의 불가"
'응급실 근무 거부' 군의관 놓고도 "징계" 거론했다가 곧바로 철회
추석 연휴 응급실 운영 불안감 커지는데, 의정갈등 해소 '요원'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오진송 기자 = 국민의힘이 의정갈등 중재를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 추진에 나섰지만, 의료계의 참여가 불투명해지면서 본격적인 논의에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의료계는 협의체 참여 조건으로 2025년, 2026년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으나, 대통령실은 내년도 증원은 확정돼 현실적으로 논의가 불가능하고 2026년과 그 이후 증원에 대해서는 숫자에 구애 없이 논의할 수 있다면서 여전한 간극을 드러냈다.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응급실 근무를 거부한 군의관에 대해 징계를 거론했다가 곧바로 철회하는 등 곳곳에서 혼선이 빚어지는 모양새다.
추석 연휴를 일주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의정 갈등 해소가 요원해지며 응급실 운영 등을 둘러싼 불안감만 더욱 커지는 상황이 됐다.
◇ 의협 "2025·2026년 백지화하고 2027년 논의" vs 대통령실 "논의 불가"
8일 의료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추석 연휴 전인 이번 주 중 여당과 야당, 의료계와 정부가 모두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의료계의 참여를 촉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여당의 구상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간극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현재 의료계는 이미 정부가 1천509명 증원을 확정한 2025년 의대 정원부터 원점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여당이 제안한 협의체에 의료계가 참여하기 위해서는 2025년과 2026년 의대 증원 계획부터 백지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협 관계자는 이날 "2025년과 2026년 의대 증원 계획을 백지화하고, 2027년 정원부터 재논의해야 한다"며 "정말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 합당하다면 2027년이나 그 이후부터 증원을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2025년 정원 조정은 불가하고, 2026년 이후 증원 문제에 대해 원점에서 논의해보자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당장 내일부터 2025학년도 수시 원서 접수로, 현재 입시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히 건드릴 수 없다"며 "2025년도는 안 되고, 2026년도부터는 의료계가 합리적 근거를 갖고 오면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정부와 의료계 간 입장 차이의 핵심은 '2025년 의대 정원'을 조정할 수 있느냐다.
의료계에서는 2025년 의대 증원 백지화가 없는 한 의정갈등이 풀릴 수 없다며, 2026년 증원부터 논의하자는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경기도의사회는 전날 "여·야·의·정 협의체 제안은 이번 사태의 원인인 2025년도 의대 증원 강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본질을 왜곡한 꼼수 주장"이라며 "증원을 먼저 중단하는 것이 상식적인 절차"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복지부 장·차관 파면과 대통령의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의사회도 "의료계가 협의체에 참여하려면 여야 먼저 합의하고, 정부에도 책임 있는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2025년 입학 정원 재검토가 없는 협의체는 무의미하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의정 갈등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하는 의협을 향한 의사 사회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경기도의사회는 "지난달 의협 대의원 총회에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임현택 집행부가 물러나지 않으면 끌어내려야 한다고 했다"며 "총회 이후에도 무기력하고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임 회장의 즉각적인 사퇴 없이는 (해결이) 안 된다는 의대생, 전공의들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공감한다"고 밝혔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의협이 더 이상 가만히 있기보다는, 적극적인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대한외과의사회 추계학술대회에 참가한 사직 전공의 일부에서 "(의료계가) 가만히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협의체는)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를 갖고 정부를 압박할 계기가 될 수 있는데 의료계에서 이런 기회를 너무 피하고 있는 것 아닌가" 등의 발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 '응급실 근무 거부' 군의관 징계 거론했다가 철회하는 등 곳곳 '혼선'
여당이 주도하는 협의체 구성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추석 연휴를 일주일 남겨두고 의정 갈등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복지부가 응급실 근무를 거부한 파견 군의관에 대한 징계를 국방부와 협의하겠다고 했다가 번복하면서 의료계가 술렁거리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현재 정부는 전공의 업무공백으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의료기관에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인력을 파견하고 있지만, 이들 중 일부는 현장 경험과 진료 역량 부족 등을 이유로 복귀를 요청해 응급실 진료를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날 복지부는 의료기관에 파견한 군의관들의 응급실 근무 거부와 관련 "군인 근무지 명령 위반에 따른 징계 조치 등을 국방부와 협의하겠다"고 했는데, 국방부는 "복지부의 요청을 받은 바 없고 징계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협의 중인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국방부는 "해당 군의관들은 부대 복귀 없이 파견 병원 내에서 부서 조정, 타 병원 파견 조정 등을 복지부와 협의 중"이라며 "이들은 파견 명령에 따라 해당 병원에 출근한 후, 병원과 업무조정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병원 인근 혹은 개인 숙소 등에서 대기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의 이같은 입장이 알려지자 복지부는 보도설명자료를 내 "근무지 명령 위반에 따른 징계 조치를 국방부와 협의하겠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며,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앞선 발언을 철회·정정했다.
복지부는 서둘러 '징계 조치 협의' 발언을 철회했지만, 의료계는 거세게 비판했다.
의협은 '군의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응급실 근무 명령을 내리고 저항하면 징계하겠다는 복지부에 대한 입장'을 통해 "의료사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늘까지도 땜질식 명령과 협박을 남발하고 있다"며 "하루마다 말 바꾸는 정부는 정신 차리고 의료대란 해결을 위한 여·야·정의 단일한 대책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징계 조치 협의' 발언을 철회한 후 국방부와 군의관 배치 등을 지속해서 협의하고, 현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파견 군의관의 의사와 의료기관의 필요 등을 조율해 의료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 소통을 강화할 계획"이라며 "향후 군의관 업무범위 등을 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의료기관과 원활하게 업무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파견된 군의관 등은 의료사고 시 법적 책임 부담으로 진료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데 대해서는 "파견 인력의 과실에 의해 배상 책임이 발생한 경우 해당 의료기관에서 자기 부담금 2천만원을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jandi@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08 20:5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