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이제그만] ③ 관심과 책임감부터 제도 개선까지 '첩첩산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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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기자

전문가들, 학대 판단 위한 규정 재정비·훈육법보다 관계 형성 강조

전담 공무원 적극 개입 주문·가정방문 서비스 의무 제도화 움직임도

(춘천·강릉=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2023년 아동학대 판단 건수 2만5천739건. 재학대 4천48건.

아동학대에 관한 보도가 끊이질 않고, 심한 경우 아동의 목숨마저 앗는 학대 범죄까지 드러나는 등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재학대 사례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쓰레기 가득한 집에서 7남매를 키우며 폭행을 일삼고, 신장질환을 방치해 지난 4월 8세 아동이 목숨을 잃은 강원 강릉시 한 가정의 경우 부모가 이 사건 이전에도 여러 차례 아동학대 범행으로 인해 아동보호처분을 받았음에도 재범한 사례였다.

전문가들은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어떤 행위가 처벌되는지 좀 더 구체화해 신고로 이어지게끔 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인식개선, 지자체의 적극적인 개입, 가정방문 서비스 제공 의무화 등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아동학대, 이제 그만'

'아동학대, 이제 그만'

[연합뉴스 자료사진]

◇ "뭐가 학대인지 알아야 신고" 규정 재정비…"관계 형성이 중요" 목소리도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3년 아동학대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4만8천522건으로 이 중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2만5천739건이다.

이 중 재학대 사례는 4천48건(15.7%), 재학대 피해 아동 수는 3천121명이다.

재학대 사례는 최근 5년간 아동학대 사례로 판단된 적이 있으면서 다시 신고가 들어와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다.

재학대 사례 학대 행위자와 피해 아동과의 관계를 보면 부모(97.4%)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예방과 재학대 사례 방지를 위해 활동 영역에 따라 각기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다.

책 '변호사가 말하는 아동학대' 저자이자 2020년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행위자 처벌 강화 태스크포스(TF) 위원으로 활동했던 박우근 변호사는 "아동학대 사건이 이슈화되면 형량을 높여서 처벌을 강화하는 데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박 변호사는 "현재 아동학대 범죄의 법정형이 가볍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며 "중한범죄를 처벌하는 것보다 중해지기 전에 예방하는 게 중요하고, 개인적으로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동학대와 관련해 어떤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는지를 좀 더 구체화하고, 동시에 다른 법률과 중복되지 않게 하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의 대대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며 "뭐가 학대인지 아닌지 일반인도 알아야 신고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정유리 강원도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모와 아동 간 긍정적인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추는 '인식개선'을 해결책으로 꼽았다.

정 상담사는 "아이를 한 대라도 때리면 처벌이 된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한 대도 안 때리고 어떻게 키우냐'라는 비아냥이나 '때릴만해서 때렸다'라는 갈등 상황이 생기는 과도기적 시기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한 대도 때리지 말라는 데 초점을 둘 게 아니라 아이와 관계를 긍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사람들이 훈육 방법에는 관심을 갖지만, 정작 유대감을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 상담사는 "처벌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회복의 기회를 가져볼 틈 없이 '학대냐, 아니냐' 행위로만 규정해서는 안 된다"며 "부모가 아이들을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관계를 잘 형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캠페인이나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인아 미안해'

'정인아 미안해'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의지가 중요" 적극 개입 강조…"가정 방문 의무화하자" 입법 추진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들의 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우리나라는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소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며 "아동이 중상을 입거나 사망해야 적극적 개입하고 있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동학대를 '남의 집안일'이라고 여겨 주변에서 신고를 꺼리는 현상을 두고도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봤다.

특히 강릉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보호처분으로 끝내선 안 되는 일"이었다며 "사망한 아동의 경우 제때 치료만 받았으면 살 수 있었던 아인데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것이 아이를 지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 대표는 "외국에서는 '경찰보다 이웃의 눈이 더 무섭다'라는 말이 있다"며 "신고자가 뒷일을 걱정하지 않고 사소한 일이라도 신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괜히 신고했다가 저 아이가 더 학대당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할 게 아니라 '신고하면 공무원이 해결해줄 거야',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거야'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다.

공 대표는 "재학대가 발생했다는 건 사회의 개입이 느슨하다는 방증"이라며 "예산 확보, 인력 증원, 주변 관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지자체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제도적인 개선을 통해 아동학대를 예방하려는 움직임도 진행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학대 예방을 목적으로 한 가정방문 서비스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입법 제안서를 마련해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강미정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장은 "현재 국내에서 시행 중인 가정방문 서비스는 보건복지부 공모사업인 '생애 초기 건강관리 사업'이 있지만 아동학대 예방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는 아니다"며 "위기 아동을 선정해 가정을 방문하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과 드림스타트도 선별적 방문으로 인해 학대 예방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이미 해외 많은 국가가 가정방문 서비스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며 "학대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판단해 입법을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동학대 예방 포스터와 아동학대 근절 위해 발 벗고 나선 이들

아동학대 예방 포스터와 아동학대 근절 위해 발 벗고 나선 이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conanys@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17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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