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2차 북핵위기·하노이 노딜 원인 지목…이제는 핵능력 과시 도구로
해리스-트럼프 두 후보에 '비핵화 아닌 핵군축 협상' 메시지 분석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북한이 그간 은밀하게 운영해 왔던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을 전격 공개하며 대선을 앞둔 미국에 압박을 가하고 나섰다.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핵물질인 HEU의 대량 생산 능력을 과시하며 미국에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협상에 나서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13일 관영매체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라늄 농축 기지를 돌아보며 무기급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 협상 '딜 브레이커' HEU…2차 북핵위기·하노이 노딜 원인
북한 핵무기 개발 역사에서 HEU는 비핵화 협상의 '딜 브레이커'(협상의 결렬요인)로 작용해 왔다.
북한이 HEU 확보를 목적으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이 처음 불거진 것은 2002년 10월이다.
당시 북한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원심분리기 제작에 쓰이는 고강도 알루미늄관의 통관 자료 등을 제시하며 의혹을 제기하자, 당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돼 있다"고 발언하면서다.
북한은 이후 UEP 존재를 부인했지만, 미국 측은 이를 믿지 않았고 결국 2차 북핵위기로 비화하며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는 백지화됐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2010년 11월이다. 북한은 당시 미국 핵물리학자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영변 핵 단지에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줬다.
헤커 박사는 북한이 영변에서 약 2천개의 원심분리기를 가동중이라고 밝혔다.
HEU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협상이 결렬된 주요 요인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폐기와 주요 대북제재 해제를 맞바꾸자고 제안하자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영변외 핵시설까지 협상대상으로 요구했고 이에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서 하노이 회담은 결국 '노딜'로 끝났다.
트럼프가 당시 요구한 영변외 핵시설은 강선 등에 설치된 HEU 제조시설로 추정됐다.
◇ 美대선 앞두고 핵능력 과시…핵군축 협상 의도 분석
북한은 원심분리기가 빼곡히 들어선 우라늄 농축시설을 전격 공개하면서 HEU 대량생산 능력을 과시했다.
이는 미국에 '핵위협이 현실'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비핵화가 현실성 없는 목표'라는 메시지를 던지려 했다는 분석이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공개된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새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가 사라진 상황에서 향후 미국과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핵보유국 지위를 바탕으로 한 군축협상'을 진행하려는 속셈도 엿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에) '북한 비핵화'라는 비현실적 요구를 하지 말고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미국의 양당 대선 후보를 모두 겨냥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측에는 '전략적 인내'로 대표되는 현 정책 기조를 고집해선 문제가 풀리지 않으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도 과거와 같은 비핵화 협상은 더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북한의 핵능력 과시가 현 바이든 정부의 한반도 정책 실패를 부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에 대한 지원사격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7차 핵실험 대신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를 택했다는 관측도 있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핵실험은 파급력이 너무 크고 리스크가 너무 높다"면서 "핵실험을 한다는 국제적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면서 주목 효과를 받게 되고 트럼프에게 유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박 교수도 "핵실험을 하면 미국 내에서 중국 책임론이 더 불거질 것"이라며 "현재 미중이 관계를 관리하는 상황에서 중국도 내부 사정이 복잡하니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북중 관계가 더 안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이번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로 대미 압박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만큼 향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거리 발사 등을 감행하며 도발 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kit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13 11:0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