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으로 첫 드라마 연출…"영화처럼 유장한 연출한 것 후회"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는 보는 입장에서는 필연적으로 답답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견디게 해줄 수 있는 장치가 뭐가 있을지 고민했죠."
MBC에서 방송 중인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Black Out)'(이하 '백설공주에게')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엉킨 실타래 풀 듯이 서서히 풀어낸다.
요즘 흥행작들의 특징인 속도감 있는 '사이다' 전개와는 거리가 멀지만, 시청률은 꾸준한 상승세다. 2.8%로 출발해 8회에서는 6.4%까지 뛰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매주 고구마를 100개씩 먹는 느낌인데도 궁금해서 안 볼 수가 없다'는 평이 나온다.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백설공주에게' 변영주 감독은 "매주 금요일에 영화 한 편을 개봉하는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드라마는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이야기법이 필요한 매체라는 걸 느끼고 있다"며 "시청률이 오르는 이유는 감독인 저조차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가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드라마와 영화판에서 외면받아왔어요. 보기 답답할 수밖에 없거든요. 걱정이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고민을 정말 많이 하면서 만든 작품이에요."
'백설공주에게'는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스릴러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전과자가 된 청년 고정우(변요한 분)가 10년 후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좇는다.
고정우는 10년 전 살인 사건의 증거들을 하나씩 파헤치는데, 믿었던 마을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 때문에 입을 맞추고 본인을 범인으로 몰아가며 사건을 덮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끈끈하게 얽혀있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변 감독은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는 고구마를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보지 않으면 통쾌함을 얻을 수 없는 장르라서 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함을 느끼겠지만, 사건의 새로운 실마리가 보일 때 그걸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해지는 재미가 이 장르를 보게 만드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개인적으로 전 사이다를 별로 안 좋아해요. 세상일이 언제 사이다로 해결된 적 있나요? 수많은 고구마를 버텨내고 나서야 조금씩 달라지잖아요."
'백설공주에게'를 통해 첫 드라마 연출에 도전한 변 감독은 처음이라서 서툴렀고, 후회가 남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그는 "작품을 영화라고 생각하고 너무 유장하게 엮으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럽다"며 "단순한 장면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내려고 노력했는데, 제가 드라마의 속도감을 너무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의 연기부터 연출,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 등은 감독이 오롯이 안고 가야 할 책임이다"고 강조했다.
현재 반환점을 돌아선 '백설공주에게'는 종영까지 6회분을 남겨두고 있다. 변 감독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형사 노상철(고준)을 언급했다. 그는 "노상철이 생각보다 유능한 사람"이라며 "주먹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경찰대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고 귀띔했다.
"방어벽을 완벽하게 쌓아 올린 사람들 틈에서 정우와 상철은 어떻게 실마리를 찾아갈지, 사건의 가해자와 목격자는 누구고, 이를 은폐한 사람들은 누구인지, 수사 과정에서 어떤 조작이 있었을지, 수호는 과연 무엇을 본건지 등 앞으로 풀릴 이야기가 많습니다. 모든 궁금증이 해소돼야 진정한 미스터리 스릴러죠."
1993년 영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으로 데뷔한 변 감독은 2012년 영화 '화차'를 마지막으로 10년이 넘는 공백기를 가졌다.
변 감독은 "공백기를 가진 이유는 개인적인 이유가 컸다"고 운을 뗐다.
그는 "4년 넘게 강풀 작가 원작의 '조명가게'를 준비했는데 투자가 잘 안됐다. 오기가 생겨서 다른 작품 제안을 거절하고 어떻게든 '조명가게'를 해보려고 노력하던 시간이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10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변 감독은 오는 10월부터 바로 차기작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배우 고현정과 장동윤이 주연하는 범죄 스릴러 드라마 '사마귀' 연출을 맡았다.
변 감독은 "앞으로는 3년에 적어도 2편 정도는 하려고 한다"며 "다다음 작품으로는 웹툰 원작을 눈여겨보고 있고, 영화 '화차' 원작자에게 다른 소설 판권을 선물 받아서 그 작품도 준비해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또 스릴러냐고요? (웃음) 아직 다른 장르가 궁금하지는 않아요. 새로운 소재, 새로운 배경은 욕심 나죠. 사극 드라마도 어렸을 때부터 꼭 해보고 싶었고, 요즘 유행하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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