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 10주년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주연 이소연·김우정
"부끄러워 않고 적나라하게 성 표현…세대마다 해석 깊이 달라"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변강쇠타령의 주인공 변강쇠는 이 판소리의 맥이 끊긴 지 오래인 오늘날까지도 강인한 남성의 대명사로 꼽힌다.
반면 그의 짝인 옹녀는 남편 잡아먹는 사주를 타고났으면서도 계속해서 남자를 탐하는 '밝히는 여자'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고선웅이 극본을 쓰고 연출한 국립창극단의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이하 '옹녀')는 이 같은 편견을 뒤집는다. 변강쇠에게 맞춰져 있던 시선에 마침표를 찍고 옹녀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이 작품 속 옹녀는 지독한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기 삶을 직접 만들어 나간다. 어리석은 행동으로 죽음을 자초한 남편 변강쇠를 되살리려 동분서주하는 순애보를 보여주기도 한다.
올해로 초연 10주년을 맞은 '옹녀'가 5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다시 한번 막을 올린다.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옹녀 역의 이소연과 김우정을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초연 때부터 옹녀를 연기한 이소연은 "해를 거듭하며 이번엔 좀 나아지지 않았나 싶다가도 항상 부족한 게 보인다"면서 "올해에는 좀 더 깊이 있는 옹녀를 보여주려 한다"며 웃었다.
"10년 전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땐 저 역시 옹녀를 '색녀' 이미지로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공연 회차가 쌓이고 저도 나이가 들면서, 옹녀는 그저 한 사람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싶은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단단한 내면이 다져지면서 후반부에 비로소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거지요. 옹녀는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 사람이에요."
김우정은 올해 공연에서 옹녀 역으로 처음 합류했다. 그는 몇 년 전 '옹녀'를 관람한 뒤 국립창극단에 입단하겠다는 꿈을 키웠을 정도로 이 작품의 열렬한 팬이다.
그는 "여성 소리꾼이라면 누구나 이 역할을 해보고 싶지 않을까 싶다"며 "처음엔 제가 꿈꾸던 옹녀를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마냥 설렜지만, 지금은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김우정이 생각하는 '옹녀'의 가장 큰 매력은 유쾌함이다. 모든 캐릭터에 해학이 묻어나는 덕에, 연습에 열중하다가도 어느새 관객이 된 것처럼 선배인 이소연의 연기를 감탄하며 보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옹녀로 10년을 살아본 이소연 역시 같은 생각이다.
그는 "판소리는 보수적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으냐"며 "하지만 가장 보수적일 것 같은 공간(국악 공연장)에서 개방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을 하는 게 너무 재밌다"고 했다.
이른바 '19금' 공연인 이 작품의 묘미는 남녀 간 성행위를 직접적이면서도 구수하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가사만 남고 소리는 사라진 '기물가'를 부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변강쇠와 옹녀가 서로의 성기를 묘사하는 노래로, 코믹한 노랫말에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어우러져 큰 웃음을 유발한다.
이소연은 "(성 관련 이야기를) 부끄럽지 않아 하고 드러내는 게 관객의 마음을 여는 것 같다"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세대마다 해석의 깊이가 다른 점도 흥미롭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옹녀'를 공연하던 당시에도 문화를 초월하는 작품의 힘을 느꼈다고 했다. '옹녀'는 2016년 창극으로는 최초로 150년 전통의 테아트르 드 라 빌 극장에 공식 초청돼 현지 관객으로부터 기립 박수를 끌어냈다.
이소연은 "공연 전에는 '옹녀'가 프랑스 관객에게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한국 관객과 똑같은 지점에서 웃음이 터지더라"며 "인종이나 문화를 떠나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창극은 어렵다'는 편견과는 달리 우리나라 관객도 가볍고 유쾌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며 "10년간 장수한 작품이라는 데 자부심도 있다"고 말했다.
김우정 역시 "고급스러우면서도 단순한 창극만의 '맛'이 있다"며 "관객들이 이 맛을 느껴보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소연은 초연부터 꾸준히 합을 맞춰온 최호성과, 김우정은 유태평양과 각각 옹녀·변강쇠 커플을 연기한다. 공연은 오는 15일까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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