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길들이는 존재 아냐…수권 변화에 인류가 적응해야"

2 months ago 2
송광호 기자

제러미 리프킨 '플래닛 아쿠아' 출간…"자본주의에서 수생태주의로 전환"

원자력 발전에 몰두하는 한국 안타까워…태양광·풍력 이용해야

인터뷰하는 제러미 리프킨

인터뷰하는 제러미 리프킨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자본주의가 나타난 지 200년 만에 지구는 '재야생화'(rewilding)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인류 중 상당수는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계속 이동해야 할 겁니다."

미국의 미래학자이자 경제·사회 사상가인 제러미 리프킨은 신간 '플래닛 아쿠아'(민음사) 출간을 맞아 지난 9일 밤 한국 언론과 화상 인터뷰를 갖고 이렇게 말했다.

'플래닛 아쿠아'는 지구 온난화가 심화함에 따라 수권(水圈:지구 표면에 물이 차지하는 부분)이 새로운 균형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지난 6천년간 인류를 지배한 수력 문명이 막을 내리고 신유목 시대와 임시사회가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책이다.

바닥 드러낸 저수지

바닥 드러낸 저수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책에 따르면 농사가 시작된 이래로 인류는 수력에 기반한 문명을 일궈왔다. 댐과 인공저수지를 건설하고, 제방과 둑을 쌓고, 운하를 파며 물을 길들였다.

특히 지난 2세기 동안 화석연료에 기반한 자본주의 시대를 맞아서 물 이용은 절정에 달했다. 인류는 이런 '산업 문명'을 유토피아로 여겼고, '진보와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물을 착취했다.

"인류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산업화, 사회주의 시스템을 구축하며 진보의 시대를 이룩했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문명의 부산물로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이산화탄소(CO2)와 같은 온실가스를 배출했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지구는 더워졌고, 각종 이상 기후 현상이 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파키스탄 홍수

파키스탄 홍수

[신화=연합뉴스]

이상 기후 문제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홍수, 가뭄, 산사태 등 자연재해가 빈번히 사람들을 덮치고 있어서다. 2010년 중국에서 발생한 홍수와 산사태로 1천520만명의 실향민이 발생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약 25%에 해당하는 18억4천만명이 가뭄이 심각한 나라에 살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데스밸리는 2021년 7월 섭씨 54, 4도로 지구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2023년 1~9월 미국에서만 산불 4만4천11건이 발생했다. 이밖에 겨울철 강추위, 대규모 봄 홍수, 여름 가뭄, 치명적인 폭염과 산불로 지구는 점차 황폐해지고 있다.

리프킨은 "인류는 화석연료를 캐서 산업화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이제 엄청난 청구서를 받아들이게 됐다"며 "자본주의 200년 만에 지구는 재야생화의 길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후버댐. 댐 다리 너머 역대 최저 수위로 떨어진 미드호.

미국 후버댐. 댐 다리 너머 역대 최저 수위로 떨어진 미드호.

[연합뉴스 자료사진]

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인류의 확신도 착각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가령 중국과 인도에는 75년 이상 된 대형 댐이 2만8천개가 있고, 미국에도 지은 지 65년이 넘은 댐이 2천200개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2050년 무렵이면 61%의 수력 발전 댐이 홍수와 가뭄에 취약한 상태에 놓일 것으로 점쳐진다.

리프킨은 "수권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며 "수권에 우리가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이제 인류가 환경 파괴를 초래하는 자본주의보단 물의 뜻에 따르는 '수생태주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경제적 성공보단 삶의 질을, 세계화보단 세방화를, 지정학보다 생물권 정치를, 국민국가보단 생물권 거버넌스를, 시장보단 네트워크를, 대기업보단 중소기업을, 화석연료와 원자력보단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북부 쇼 지역의 원자력발전소

프랑스 북부 쇼 지역의 원자력발전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런 점에서 최근 원자력에 골몰하고 있는 한국 정부와 산업계의 움직임은 안타깝다고 리프킨은 말한다.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진보한 에너지보다 '철 지난' 전력에 의존한다는 점에서다. 원자력은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효율성도 떨어진다. 예컨대 원자력 발전 비율이 전체 전력 생산의 68%를 차지하는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 중단 혹은 축소로 여름철에 에어컨을 돌리지 못해 사망하는 노인이 속출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여름철 물이 뜨거워지는 바람에 발전에 필요한 냉각수를 끌어오지 못해서다.

"태양력과 풍력의 고정비용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원자력 발전소보다 이득인 데다 한계비용도 거의 없습니다. 태양이나 바람이 청구서를 보내진 않으니까요. 화석연료는 개발·저장하는 데 큰 비용이 듭니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회복한 나라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가뭄과 홍수 등 기후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한국이 오래된 기술에 의존한다는 건 안타깝습니다."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리프킨은 기후변화로 촉발된 자연재해가 결국 지구가 생명력을 강화하는 과정이라고 진단하면서 '플래닛 아쿠아'에 사는 우리가 물을 길들일 게 아니라, 앞으로는 물에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을 인류 마음대로 개발하기보다는 자연이 일으키는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세계인구는 감소할 것이고, 남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계속 이동할 것이다. 이것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다. 수권이 스스로를 해방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는 그 수권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동시에 수권을 우리 종의 변덕에 맞춰 적응시킬 수 있다는 순진한 허구를 버려야 한다."

408쪽. 안진환 옮김.

buff27@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10 13: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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