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초 글로벌 주식시장이 나타낸 '발작적' 조정은 많은 투자자를 놀라게 했다.
주식시장에서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블랙 먼데이로 불렸던 8월 5일 동아시아 증시가 보여준 변동성은 유별났다. 하루에 일본 니케이225지수가 12.4%, 한국 코스피가 8.8%, 대만 가권지수가 8.4% 급락했다.
급락 직후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매물 출회가 글로벌 증시의 급락을 불러왔다는 해석이 많았다. 캐리 트레이드는 조달 비용이 낮은 국가에서 차입해 기대수익률이 높은 국가에 투자하는 행위를 뜻한다.
일본은 오랜 기간 캐리 트레이드를 위한 자금 공급원으로 거론됐다. 2000년대 들어 제로 금리가 고착화된 국가였기 때문에 자금 조달 코스트가 압도적으로 낮고, 최근에는 엔화 가치마저 기조적 약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엔화 약세는 2012년 12월 아베 내각이 출범한 직후부터 본격화됐는데, 당시 80엔 수준이던 엔·달러 환율은 2024년 7월 초 160엔대까지 높아졌다.
금리가 낮고 통화가치도 약해지는 일본에서 차입해 수익성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는 명료한 내러티브로 보이지만 딱히 실체를 찾기 힘든 개념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차입한 자금이 어떤 자산에 투자되는지 알 수 있는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 데다, 엔 캐리 트레이드를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는 전문적 투자자들을 찾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엔화가 갑자기 강세를 나타낼 경우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을 중심으로 글로벌 자산시장이 흔들렸던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당장 8월 초의 글로벌 증시 급락 직전인 7월 31일에도 일본은행(BOJ)의 기준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엔화 강세가 나타났고, 2016년에도 약세를 나타내던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자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주식시장이 급격한 약세를 나타낸 적이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와 자산시장 조정을 기계적 인과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나름의 상관성은 존재한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또 구체적인 수치로 측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맹목이다.
그래서 8월 초의 글로벌 금융시장 급등락을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라는 내러티브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8월 5일 폭락 전 3가지 전조가 있었다. 먼저 미국 빅테크(거대정보기술기업) 주가의 강세를 선도하던 엔비디아 주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엔비디아 주가는 동아시아판 '블랙 먼데이'가 나타나기 직전 3주 동안 17%나 하락했다. 인공지능(AI) 거품(버블)론이 주가에 영향을 줬던 셈이다.
두 번째 변화는 일본에서 나타났다. 7월 31일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직후 엔·달러 환율은 152엔에서 141엔까지 급락했다. 엔·달러 환율의 연중 고점이 7월 3일의 161.9엔이었으니, 엔화 가치는 일본은행의 긴축을 선반영해 7월 내내 약해지다가 금리 인상 발표 이후 가속도를 낸 셈이다.
마지막 변화는 미국 경기 침체 우려다. 8월 2일 발표된 7월 고용지표와 ISM제조업지수가 부진하게 나오면서 우려가 증폭됐다.
엔 캐리 트레이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변화들이 8월 초 폭락에 앞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데, 일본의 금리 인상과 엔화 강세는 일본으로부터의 자금 조달 코스트를 높이는 요인이다.
미국 증시의 버블 논란과 경기 침체 우려는 캐리 트레이드가 향하는 투자처에 대한 우려를 높였다고 볼 수 있다.
돈에 꼬리표가 달리지 않았으니 엔화로 차입된 자금이 어떤 자산에 투자됐는지 알기 어렵지만 지난 10여년간 미국은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모으는 블랙홀 역할을 했다. 미국의 기술주들은 승승장구했고, 심지어 미국 국채 금리도 글로벌 주요국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돈을 빌리는 코스트 상승과 돈이 투자되는 국가에 대한 우려 증폭이 맞물리면서 나타난 주가 급락이 8월 초 블랙 먼데이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8월 초 급락 이후 글로벌 증시는 빠르게 반등세를 나타냈다. 일본에서 반전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의 신이치 우치다 부총재가 주가 급락 직후인 8월 7일 '시장이 불안하게 움직일 경우 금리를 추가로 인상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엔화 강세가 진정됐다.
우치다 부총재의 발언은 진심이라고 본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에는 명백한 부작용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 경제가 너무 취약하다.
일본 경제는 엔화 약세에 기댄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큰데, 엔화 강세가 지속되면 성장 자체가 큰 타격을 받는다. 일본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작년 1.9%였지만 2024년 전망치는 0.1%에 불과하다. 엔화 강세를 견뎌낼 만큼 일본의 펀더멘털이 강하지 않다.
두 번째는 주식시장의 교란이다. 일본 증시는 엔화 가치와 높은 상관성을 갖는다. 엔화 약세와 수출 기업의 실적 호전이 일본 증시의 상승 동력이다.
기시다 정부는 '저축에서 투자로의 전환'을 강조했는데, 그 결과 소액투자비과세계좌(NISA)는 올해 6월 말 전년 동기 대비 30% 늘어난 2천200만 개까지 증가했다. 정치가 주가를 전적으로 좌우할 수는 없지만 긴축 강화로 주가를 더 압박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마지막으로 일본 정부의 이자 부담이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260%에 달한다.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지급 비용 부담을 일본 정부가 감내하긴 힘들다.
그러나 일본발 금융 교란 요인은 확실히 희석되고 있고, 주가는 이를 빠르게 반영했다.
다만 8월 초 급락의 또 다른 축이었던 미국은 상황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경기 둔화 우려를 9월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상쇄하고 있지만 AI 버블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다.
글로벌 주가가 8월 초 폭락 직전의 고점을 넘어서기는 힘든 상황이 아닌가 싶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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