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전세사기·임금체불 등 대응 주력…합수단 출범 성과
이재명·김여사 사건 진통…명품백 사건 결론 못 내고 퇴임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윤석열 정부 첫 검찰총장인 이원석 총장이 2년의 임기를 마치고 13일 퇴임식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다.
법조계에서는 임기 중 민생 침해 사건에 대한 검찰의 대응력을 키우고 각종 합동수사단을 출범시켜 수사권 조정으로 인한 후유증을 극복했다는 점이 성과로 꼽힌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권 인사 대상 수사가 임기 내내 이어져 검사 탄핵 등 정치적 풍파에 시달렸고, 갖은 논란 끝에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 사건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점은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 취임 즉시 '민생침해범죄' 대응 강조…합수단 연이어 출범
이 총장은 2022년 5월 총장 공석 상황에서 대검찰청 차장으로 임명돼 직무대행을 맡았고 9월 16일 총장으로 취임했다.
평소 '교수님', '선비'로 불릴 만큼 온화한 성품과 원칙주의적 태도를 갖춘 그가 침체했던 조직을 되살릴 것이라는 기대가 검찰 안팎에서 나왔다.
이 총장은 취임 당일 '1호 지시'로 악질 스토킹 사범을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하라고 전국 검찰청에 지휘했다. 이틀 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으로 사회적 분노가 거셀 때였다.
이때부터 2년 내내 이 총장은 일선 청에 '민생침해범죄'를 강력히 수사하고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며 적극적으로 항소하라는 지시를 여러 차례 내렸다.
그가 지목한 민생침해범죄는 스토킹과 디지털 성범죄, 전세 사기와 보이스피싱, 마약류 오·남용, 임금 체불과 음주운전, 주가 조작과 코인 사기 등 국민이 일상에서 노출되기 쉬운 것들이 주를 이뤘다.
이 총장은 대검에 마약·조직범죄부를 부활시키고 전국 검찰청에 전세 사기와 디지털 성범죄 전담검사를 지정했다. 음주 운전자의 차량을 몰수하는 방침을 세우고 임금체불 사범을 적극적으로 구속하는 등 강경책을 쓰기도 했다.
임기 중 합동수사 기관을 여럿 꾸려 수사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 총장의 지시로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과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 가상자산범죄 합수단, 국가재정범죄 합수단이 마련됐다.
범정부 차원에서 구성된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도 대검이 주도했다.
이 총장은 임기 중 주변 참모들에게 "검찰이 정치적 사건이 아닌 민생 침해 범죄 대응에 성과를 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검찰총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일선 소방서와 경찰 지구대, 지방고용노동청,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과 마약 재활센터 등 민생 관련 현장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 '이재명·김여사 수사'로 전방위 긴장관계…"나를 탄핵하라" 외치기도
그러나 정작 임기 내내 이 총장의 발목을 잡은 것은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수사였다.
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등 각종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대표를 정면으로 겨눈 것은 이 총장이 취임하면서부터다.
서울중앙지검은 2022년 6∼7월 수사팀을 재구성하고 대장동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사에 돌입했으며 이 총장 취임 한 달 뒤인 10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체포하면서 이 대표의 '대선자금 수사'로 수사망을 넓혔다.
이때부터 검찰과 민주당이 '부패 범죄 엄단'과 '검찰 독재' 주장으로 맞서는 긴 줄다리기가 본격화했다. 검찰이 이 대표를 상대로 2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5차례에 걸쳐 기소할 때마다 민주당은 크게 반발했다.
이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등 야권을 겨냥한 수사가 늘어나면서 갈등은 악화했다.
이 같은 국면은 초유의 '검사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다. 안동완 검사에 이어 손준성·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안이 발의되자 이 총장은 작년 11월 "당 대표의 사법 절차를 막아보려는 방탄 탄핵"이라며 "검찰 총장을 탄핵하시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올해 들어서는 김 여사 수사와 관련해 정권과 긴장 관계에 놓였다.
지난 5월 이 총장이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수사팀 구성을 지시하고 엿새 만에 법무부가 검찰 고위급 인사를 단행한 것을 계기로 올해 초부터 '풍문'으로 돌던 정권과의 갈등설이 증폭됐다.
이후 이 총장이 법무부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수사지휘권 회복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내부적으로도 서울중앙지검과 김 여사 조사방식 등을 두고 이견을 보였고, 수사팀이 대면조사 사실을 늦게 보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총장 패싱' 논란이 불거지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 총장은 김 여사 사건을 수사심의위원회에 회부하면서까지 논란을 최소화하려 했지만, 이후 최재영 목사에 대한 별도 수심위 회부가 결정되면서 '임기 내 처리'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이 총장이 좌고우면하느라 결론적으로 주요 사건들에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결국 명품가방 수수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김 여사 사건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분도 내리지 못한 채 차기 총장에게 공을 넘기게 됐다.
다만 이는 정치권이 유불리에 따라 검찰을 흔드는 상황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사권을 절제해 행사하는 등 신중을 기하다 벌어진 일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 총장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권에서 과도하게 불어온 외풍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총장은 지난해 말 양쪽에서 비판이 이어지자 주변에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며 "검찰은 할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검찰을 떠나며 낭독한 퇴임사에도 이러한 아쉬움과 회한이 그대로 묻어났다.
이 총장은 "한쪽에서는 검찰 독재라 저주하고 한쪽에서는 아무 일도 해낸 것이 없다고 비난한다. 한쪽에서는 과잉수사라 욕을 퍼붓고, 한쪽에서는 부실 수사라 손가락질한다"면서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안타깝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wa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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