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주춧돌' 파독 광부·간호사…전북도, 예우·지원책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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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두 기자

도 출장단, 베를린서 파독 근로자 150명과 만남·문화공연

1960년 중반 파독 광부 독일 생활

1960년 중반 파독 광부 독일 생활

[파독근로자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주린 배를 부여잡고 보릿고개를 넘던 1960년대.

6·25 이후 기근에 시달리던 한국 정부는 서방의 무상원조가 급격히 줄자 외화벌이 수단으로 근로자들을 독일로 파견했다.

인구 급증으로 실업난에 처한 한국과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서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당시 수많은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가 끼니를 거르던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독일행을 택했다.

이역만리 타국 땅을 밟은 파독 광부들은 먼지와 돌가루가 흩날리는 지하 1천m 광산 막장에 들어가 석탄을 캤다.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은 환자들 대변을 치우고 식사 수발을 들면서 의료인 대접은커녕 무시와 차별을 견뎌내야 했다.

파독 근로자들은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월급의 절반 이상을 고국으로 보냈다.

이들이 1965∼1975년 고국으로 송금한 돈이 1억달러가 넘는다는 기록도 있다.

단 1달러도 소중했던 당시의 경제 상황을 반추해보면 파독 근로자들의 피, 땀, 눈물이 한국 근대화의 주춧돌이었던 점은 분명하다.

질곡의 세월을 견뎌온 파독 근로자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베를린 파독 근로자 간담회 행사

베를린 파독 근로자 간담회 행사

[전북특별자치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6일 오전 11시. 베를린 외곽에 있는 한인 성당 입구에 '전북특별자치도, 파독의 역사와 손잡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크게 걸렸다.

공공외교를 위해 독일을 방문한 전북도 출장단은 그 옛날 한국을 떠나 독일에 터를 잡은 파독 근로자 150여명과 만났다.

어린 나이에 낯선 땅에서 몸부림쳤던 이들은 어느덧 평균 연령 80세의 노인이 돼 있었다.

출장단에 따르면 군산 출신의 교민 채수웅씨는 고향 사람들과 만남에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는 "25살이던 1971년 어려운 가정 환경을 이겨내려고 무작정 독일에 왔다"며 "하루에 8시간씩 석탄을 캐면서 정말 고생 많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전주 출신의 교민 김광숙씨도 "1970년에 간호사로 파견돼 베를린에서 청춘을 보냈다"며 "그 시절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지만 가족과 조국에 도움이 됐다는 자긍심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한데 모인 파독 근로자들은 전북도가 준비한 판소리 공연, 서예 퍼포먼스, 한지 공예 체험 등을 즐기면서 고향의 정과 흥을 만끽했다.

김관영 도지사는 "제가 태어난 1960∼1970년대 대한민국은 몹시 가난한 나라였다"며 "여기 계신 분들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 대한민국 근대화의 근간이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 도약은 여러분의 땀과 눈물의 결실"이라고 덧붙였다.

전북도는 추후 파독 근로자들을 예우하는 지원책을 마련하고 이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할 계획이다.

지난 5월에는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지원에 관한 조례'도 제정한 바 있다.

do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06 16:4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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