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쓴 병사는 관동대지진 때 계엄부대 나라시노 기병연대(習志野騎兵連隊) 소속 이등병 구보노 스게지(久保野 茂次)다. 지진이 일어난 해 다이소(大正) 12년 7월부터 12월까지 매일 적었다. 모두 100페이지 분량.
2일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부산외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구보노는 지진 때 근무하러 나가 학살현장을 눈으로 본 것을 일기에 담았다.
나라시노 기병연대는 지진 때 계엄사령부였고 자경대와 합류해 조선인을 마구 닥치는 대로 살인했다. 살해방법은 100여 가지에 달한다. 지진(震災)은 오전 11시 발생(진도 7.9)해 관동 지방 동경에 피해가 가장 컸다. 지진이 일어나면 안전 경보령을 내려야 한다. 계엄령을 내려 조선인을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며 마구잡아 죽인 것은 1919년 3·1일 독립운동 트라우마에 걸린 인물 탓이다.
[울산=뉴시스] 대정 11월 28일 구보노 일기. 군·경부대 내에서도 조선인을 얼마나 죽였다는 것을 절대 입으로 말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김문길 소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소장은 "선량한 조선인들은 반항할 엄두도 못 냈다. 조선인 여성들을 죽이고 시체를 처리 못 하도록 목에 쇄 뭉치를 달아 연못에 버렸다"면서 "이 같은 살해 사실들이 드러날까 일본은 비밀로 했다. 구보노 '대정일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한편 일제는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1923년) 때 조선인 폭동의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도쿄·가나가와 현·사이타마 현·지바 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 치하에서 군대·경찰, 자경단은 6000여 인명을 학살했다. 일본 정부는 군대·관헌의 학살을 숨기고 자경단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 재판에 회부했다. 자경단원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