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엔씨소프트[036570]가 그간 자체 게임을 서비스해온 플랫폼 '퍼플'(PURPLE)을 트리플A(블록버스터)급 외부 게임까지 포함한 종합 PC게임 플랫폼으로 확장한다고 밝히며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오는 10일 새롭게 출범을 앞둔 '퍼플'은 스마일게이트의 게임 유통 플랫폼 스토브(STOVE)를 잇는 두 번째 토종 PC게임 유통 플랫폼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퍼플이나 스토브가 국내외 PC게임 유통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스팀(Steam)과 대등하게 경쟁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여럿 있다.
◇ 획기적 강점 없으면 안 갈아탄다…'락인' 극복 어려워
가장 큰 걸림돌은 소비자가 기존 플랫폼에 매여 쉽사리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지 않는 락인(Lock-in) 효과다.
PC 게임 플랫폼은 넷플릭스나 티빙 같은 구독형 OTT(동영상 스트리밍)와 달리 이용자가 직접 구입한 게임을 자신의 라이브러리에 저장해 플레이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라이브러리에 많은 게임을 쌓아둔 이용자는 획기적인 장점이 없다면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는 데 거부감을 느낄 공산이 크다.
스팀이 제공하는 편의 기능과 커뮤니티 등은 아직도 다른 스토어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것이 게이머들의 평가다.
스팀보다 후발 주자인 에픽게임즈의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한때 이런 문제를 '독점작'으로 풀려고 했다.
외부 게임 개발사와 독점 유통 계약을 맺고, 출시 후 일정 기간 자사 플랫폼을 통해서만 게임을 판매하는 전략이다.
에픽게임즈는 이런 전략으로 한때 '보더랜드' 같은 인기 시리즈의 차기작을 일정 기간 독점으로 유통하면서 스팀을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독점작 중 PC 플랫폼에서 성공한 작품은 '포트나이트' 같은 에픽게임즈 자체 제작 게임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
자금 사정이 넉넉하거나 차기작 흥행 가능성이 입증된 게임 개발사라면 굳이 독점 계약을 체결할 이유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많은 소비자가 독점 판매 기간이 끝나고 게임이 스팀에 나올 때까지 기다린 것도 한몫했다.
소비자들의 강한 락인 현상 때문에 한때 자체 PC 게임 유통망을 내세웠던 마이크로소프트(MS), 일렉트로닉 아츠(EA), 유비소프트, 락스타게임즈 같은 기업들은 일찍이 스팀에 게임을 '병행 출시'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한 지 오래다.
◇ 개발사도 스팀 선호…후발주자는 출혈경쟁 불가피
소비자뿐 아니라 플랫폼에 게임을 입점하는 개발사도 기존 플랫폼을 선호한다.
현재 스팀은 입점한 게임사에 매출 규모에 따라 20∼30%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구글 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 같은 모바일 앱 마켓의 인앱 결제 정책과 비슷하나 매출 규모가 클수록 요율이 줄어드는 구조인 것이 특징이다.
후발 주자인 에픽게임즈는 스팀의 이런 수익 배분율이 불공정하다고 여론전을 펼치며 공격적인 수수료 정책을 앞세웠다.
에픽게임즈는 최대 12%의 수수료만 받고, 신규 입점한 게임의 수수료를 6개월간 면제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게임사들은 여전히 스팀 입점을 선호했다. 게임을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홍보하고 판매하는 데 있어 스팀만큼 적합한 플랫폼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혈 경쟁은 적자로 돌아왔다. 에픽게임즈는 2021년 애플과의 반독점법 소송 과정에서 에픽 게임즈 스토어에서 발생한 적자가 2020년 기준 4억4천400만 달러(약 5천800억원)에 이르며, 2027년까지 흑자 전환이 어려울 것이라는 취지의 서면을 제출하기도 했다.
인디게임 유통에 특화된 스마일게이트 스토브 역시 입점한 게임사들에 스팀보다 낮은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토브의 정책은 여러 국내 중소 게임 제작업체가 스토브에 입점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스마일게이트스토브는 2022년 스마일게이트홀딩스에 합병되기 전인 2020년까지 적자를 냈고 2021년이 돼서야 간신히 연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엔씨소프트의 '퍼플'도 비슷한 도전에 직면할 전망이다.
한 벤처캐피탈(VC) 업계 관계자는 "신생 플랫폼인 만큼 초기에는 고객사에게 상당히 유리한 계약조건을 내세워 규모를 키운 뒤 이후 추가로 생길 파이프라인을 기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 자유로운 게임 유통 가로막는 정부 주도 게임 심의
게임산업이 발전한 선진국 중에서 중국 다음으로 빡빡한 게임 심의 제도도 '퍼플'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2017년 게임물 자체등급분류 제도가 도입되며 게임위가 지정한 앱 마켓이나 게임 유통사는 자율적으로 게임 등급분류를 매길 수 있도록 했으나,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은 여기서 제외됐다.
또 자체등급분류를 받은 게임이라도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등급을 직권으로 상향할 수 있으며, 일부 게임은 내용을 문제 삼아 불법 게임물로 간주하고 유통 자체를 금지할 수 있다.
영리 목적의 게임 유통에 의무적으로 사전 심의를 요구하고, 미심의 게임물 유통을 형사 처벌하는 국가는 중국과 한국뿐이다.
스팀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다수의 성인용 게임이 국내에서 심의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거 차단돼 게이머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판매 중인 게임물의 이용등급이 언제 상향되거나 차단될지 예측하기 힘든 국내 심의 제도는 게임 플랫폼과 창작자 입장에서 모두 부담으로 다가온다.
정부는 올해 초 게임 등급분류를 중장기적으로 민간에 완전히 이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게임위의 사후관리 권한은 여전히 유지한다는 방침인 만큼, 합리적인 심의 절차와 기준 정비라는 과제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jujuk@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07 11: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