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북한산의 공룡능선, 의상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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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숙 기자

설악산 공룡능선에 견주는 '비경'

의상능선(왼쪽)과 백운봉·만경대·노적봉(오른쪽)[사진/백승렬 기자]

의상능선(왼쪽)과 백운봉·만경대·노적봉(오른쪽)[사진/백승렬 기자]

(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북한산 의상능선은 '북한산의 공룡능선' 또는 '작은 공룡능선'으로 불린다. 설악산 공룡능선 못지않게 주변 풍광이 아름답고, 지세가 험해 붙은 애칭이다.

◇ 매혹의 작은 공룡능선

공룡의 등뼈처럼 울끈불끈 솟은 암릉을 타는 재미가 짜릿하다.

능선에 올라서면 북한산 최고봉인 백운봉(해발 835.6m), 만경대(800.6m), 노적봉(715.5m), 원효봉(510.3m)과 도봉산 오봉(660m)이 왼쪽에 장쾌하게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봉우리는 보현봉(714m), 문수봉(727m) , 비봉(560.3m), 족두리봉(367.3m) 등이다.

발밑으로는 서울, 고양, 파주, 김포, 인천의 시가지가 끝 간 데 없이 이어진다.

멀리로는 서해와 하늘이 맞닿아 가물거리듯 아득하다. 의상능선은 도시 주말 산객이 가보고 싶은 '로망'이라는 게 헛말이 아니다.

의상능선에서 바라본 고양시와 서해[사진/백승렬 기자]

의상능선에서 바라본 고양시와 서해[사진/백승렬 기자]

◇ 7개 봉우리를 넘는 의상능선

장마와 폭염이 번갈아 가며 여름을 지치게 만들던 날 의상능선에서 만난 여성 탐방객은 "너무 좋은 곳이라 안 오고는 못 배기겠어요"라고 털어놓았다. 축축한 바위를 걷는 게 어렵지 않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이었다.

산에서는 폭염도 한풀 꺾이는 것 같았다.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로 흐르는 바람이 몸을 식히기에 넉넉하고 차가웠다.

산채가 크고, 도심 가운데 자리 잡은 북한산에는 들머리가 다양하다. 탐방로를 짜면 100개 넘게 나온다고 한다.

주요 능선코스로는 의상능선, 원효능선, 산성주능선, 비봉능선, 형제봉능선, 우이능선, 칼바위능선, 진달래능선, 상장능선, 응봉능선, 사자능선, 대성능선 등이 있다.

의상봉 암벽 등반[사진/백승렬 기자]

의상봉 암벽 등반[사진/백승렬 기자]

의상능선, 원효능선, 산성주능선을 이어 걸으면 북한산성 16성문을 종주하게 된다. 이처럼 수많은 탐방로 중 의상능선은 산길을 걷는 맛이 으뜸으로 꼽힌다.

의상능선은 의상봉(502m), 용출봉(571m), 용혈봉(581m), 증취봉(593m), 나월봉(651m), 나한봉(711m), 문수봉(727m)에 걸쳐 있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성 입구에서 시작하는 길은 이들 7봉을 지나 대남문까지 이어진다. 거리는 4.5㎞ 정도.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에 가사당암문, 증취봉과 나월봉 사이에 부왕동암문, 나한봉과 대남문 사이에 청수동암문이 있다.

탐방은 대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해 대남문을 거쳐 종로구 구기동 계곡 끝의 구기탐방지원센터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반대 방향의 탐방도 흔하다. 총 탐방거리는 7㎞ 조금 넘는다.

의상봉은 의상능선에서 가장 낮지만 제일 험한 바위 봉우리이다.

의상봉에 다다르면 한고비 넘겼다는 안도감에 젖는다. 의상능선과 원효능선은 마주 보고 있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두 고승이 서로를 바라보는 형국이다.

청수동암문 가는 길[사진/백승렬 기자]

청수동암문 가는 길[사진/백승렬 기자]

원효봉은 원효능선에서 제일 낮지만, 가장 가파른 봉우리이다.

한양도성 해설 자원봉사가인 권혁준 한국청년연합(KYC) 도성길라잡이는 "의상과 원효는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라고 몸을 낮추지만,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도 않는다"며 "두 능선을 의상, 원효라고 지은 한국인의 정서가 흥미롭다"고 말했다.

의상봉에서 산줄기가 한 차례 내려꽂혔다가 다시 솟은 봉우리가 용출봉이다.

솟구친 기세가 드세다. 용혈봉에서 뒤돌아보니 아찔한 절벽 위에 난 실낱같은 능선 길을 어떻게 건너왔나 싶다.

하지만 실제 걸을 때는 그다지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험한 구간에는 철제 난간이나 계단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나한봉에는 성곽 일부분을 네모나게 돌출시켜 쌓은 구조물인 치성이 있었다.

'치성'의 '치'는 꿩을 뜻한다. 성곽 생김새가 꿩의 머리처럼 돌출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성곽의 역할이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피는 꿩의 습성과 비슷해 지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치성은 적의 접근을 조기에 포착하고,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기에 유리하다. 나한봉 치성에서는 한강 유역을 한 눈에 관찰하고, 서해안 하구와 강화도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

문수봉은 북한산 남쪽 산행의 중심 봉우리이다. 구기동 계곡, 비봉능선, 사모바위, 승가봉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에게 중요한 이정표이다.

의상능선에 있는 북한산성 여장[사진/백승렬 기자]

의상능선에 있는 북한산성 여장[사진/백승렬 기자]

문수봉 아래 문수사는 고려 초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추락 위험으로 인해 탐방이 허용되지 않는 보현봉(714m)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깊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우람한 보현봉을 마주 보는 문수사는 북한산 내 전망이 가장 뛰어난 사찰로 꼽힌다.

문수사 샘물은 목마른 산객에게 감로와 같다. 문수봉에서 구기동 계곡으로 내려오면 광화문으로 나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 조선의 '안보 울타리' 북한산성과 '왕의 길'

의상능선 코스에서는 대남문, 가사당 암문, 부왕동암문, 청수동암문 등 대문 1개, 암문 3개를 만난다.

이는 북한산성 16성문 중 일부이다. 삼국시대 토성을 조선 숙종 37년인 1711년 석성으로 고쳐 쌓은 북한산성에는 주요 출입시설로 대문 6곳, 작은 암문 8개, 계곡물이 빠져나가는 수문 2개가 있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큰 전란을 겪은 조선이 영ㆍ정조 시대에 부흥기를 맞았던 것은 숙종 대에 국가 기틀을 재정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숙종의 북한산성 축조도 국가방어 체계 재구축의 일환이었다.

북한산성 성곽[사진/백승렬 기자]

북한산성 성곽[사진/백승렬 기자]

두 전란 당시 선조와 인조는 도성과 백성을 버렸다.

한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부끄러움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숙종은 방어에 취약한 한양도성을 보완하기 위해 북한산성 축성을 즉위년부터 신하들과 논의했다.

병자호란 후 더는 성을 쌓거나 수리하지 않겠다고 청나라에 한 다짐, 공사의 어려움, 풍수지리 등을 이유로 반대하던 신하들과 긴 논쟁 끝에 숙종은 논의 시작 후 36년 만에 북한산성 축조를 결정할 수 있었다.

논의 과정은 길었지만, 실제 축성 공사는 길지 않았다. 불과 6개월 만에 공사는 끝났다.

성벽은 비교적 낮은 곳부터 해발 700m 이상의 봉우리 능선부까지 축조됐다.

자연 암반이 성벽 구실을 하도록 험한 지세를 살렸다.

성벽을 쌓지 않은 봉우리 정상 구간들은 모두 약 3㎞이다. 성벽을 쌓은 구간은 약 8.5㎞이다.

의상봉 가는 길[사진/백승렬 기자]

의상봉 가는 길[사진/백승렬 기자]

성곽의 여장은 무너진 곳이 많으나 성체는 꽤 보존돼 있다.

여장은 성벽의 몸체 부분에 설치한 낮은 담장이다. 다가오는 적에게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도록 뚫은 구멍을 총안이라 한다. 여장에는 대개 총안 3개가 뚫려 있다.

지표를 향해 비스듬히 뚫려 근접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근총안, 멀리 있는 적을 향해 쏠 수 있도록 수평으로 뚫은 원총안으로 구분된다. 북한산성의 여장은 적당히 다듬은 할석, 즉 깬돌로 쌓았다.

의상능선에서는 허물어질 듯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깬돌 여장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성랑은 경비초소를 지칭한다. 현재까지 143개의 성랑지가 북한산성에서 발굴됐다. 의상능선에는 성랑지가 네댓 군데 되는 것 같다.

성 내부 시설로는 임금이 머무는 행궁, 북한산성 수비를 맡았던 삼군문(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유영 3곳, 이 유영의 군사 지휘소인 장대 3곳이 설치됐다.

군량 비축 창고 7곳, 승병이 주둔했던 승영 사찰 13곳이 있었다.

나한봉 치성[사진/백승렬 기자]

나한봉 치성[사진/백승렬 기자]

북한산성에 행행했던 왕은 숙종과 영조였다. 숙종은 북한산성이 완공된 이듬해에 한 번, 영조는 재위 기간에 두 번 북한산성을 방문해 국방의 의지를 다졌다.

정조는 세손 시절 할아버지 영조와 함께 산성을 찾았다.

숙종은 북한산성에 도착해 '서문 초입에서 한번 고개 돌려 돌아보니/기운 솟고 뜻 웅장해져 내 근심 사라지네/도성 지척에 금성탕지 같은 성 굳건한데/어찌 우리 백성이 지키는 서울을 버리겠소'라고 시를 지었다. 외적이 침입하더라도 도망가지 않고 백성과 함께 지키겠다는 결의기 담겼다.

숙종이 걸었던 대서문∼행궁∼동장대∼대동문, 영조가 거동했던 창의문∼대성문∼행궁∼대남문∼창의문 경로는 '왕의 길'로 불린다.

북한산성은 둘레 12.7㎞, 면적 55만7천㎡(약 16만6천 평)로, 둘레가 18.6㎞인 한양도성과 탕춘대성을 통해 연결된다.

탕춘대성은 숙종이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을 잇기 위해 축조했으나 완공되지는 못했다. 한양도성 인왕 구간에서 북한산 향로봉으로 이어지며 약 4㎞이다.

◇ 기네스북에 오른 북한산…세계를 홀리는 K 등산

북한산국립공원은 단위 면적 당 탐방객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2009년 기준 방문객 수는 865만명이다.

북미, 유럽, 동남아,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탐방객도 많다. 백운봉 너럭바위에 앉아 풍광을 즐기는 탐방객 중에는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 보일 정도이다.

취재 중 대남문 근처에서 마주친 젊은 외국인 여성은 물 한 병 손에 쥐지 않고 스마트폰 앱으로 행로를 찾아가며 나홀로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대남문[사진/백승렬 기자]

대남문[사진/백승렬 기자]

탐방객이 많은 데는 북한산까지 연결되는 촘촘한 대중교통 체계가 한몫한다.

지하철 타고 국립공원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외국인들은 탄복한다.

북한산성 입구 주변에는 '따릉이' 무인 대여소도 몇 개 있다. 산성 입구까지 따릉이를 타고 와서 가뿐하게 산행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삶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멋쟁이로 보였다.

북한산은 서울시 종로구,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시, 고양시에 걸쳐 있다.

거대 배후 도시를 끼고 있는 것도 방문객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탐방객이 많은 만큼 안전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북한산 국립공원 스탬프투어 안내문[사진/백승렬 기자]

북한산 국립공원 스탬프투어 안내문[사진/백승렬 기자]

인기 구간인 북한산성 입구∼백운봉 코스의 일부는 낙석 위험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안전 산행은 움직일 수 없는 제1 수칙이다.

북한산에는 아담한 오솔길, 맑은 계곡 따라 난 등산로, 평지처럼 편안한 능선길, 험한 암벽 코스 등 다양한 탐방로가 있다.

푸른 숲에 싸인 돔 모양의 육중한 바위 봉우리는 외경을 불러일으킨다.

북한산을 '애정하는' 진짜 이유는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명산이기 때문이라고 산객들은 입을 모은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06 0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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