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의대 증원 취소 요구…"의대·수련병원 아수라장 될 것"
"당사자 배제된 정책 결정…증원 아닌 필수 의료 문제 해결해야"
(춘천=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연봉 수억원 준다는 데 지역의료원 안 간다? 페이 문제가 아니에요. 속초의료원만 해도 1명만 뽑는데, 혼자 365일 당직을 어떻게 합니까? 그런 고민은 전혀 없어요. 그렇다고 갓 의대 졸업한 사람을 뽑으려고 하진 않을 거 아니에요. 지역에는 의사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 숙련된 의사가 없는 겁니다."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2일 강원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정부에 내년도 의대 증원 취소를 재차 요구했다.
비대위는 "내년 의대 정원이 총 4천500명으로 정해진다면 2026년 정원을 3천명으로 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의학교육 선진화 방안으로 5조원을 투자하고 내년에만 수천억의 혈세를 쓰는데 1년 만에 학생 수에 맞춰 채용한 교수를 해고하거나 증축된 시설을 다시 철거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더군다나 이대로 의대생들이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년에는 7천500명의 학생이 수업받아야 한다"며 "이런 기형적인 상황은 이들이 수련을 마칠 때까지 이어질 것이며 의대와 수련병원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9일 충북 의대 본관 앞에서 의대 증원 취소를 위한 삭발식을 열고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김충효 비대위원장은 화상 연결을 통해 "내년도 증원 정책을 지금 취소해도 떠난 전공의와 학생이 얼마나 돌아올지 알 수 없고 지역의료, 필수 의료는 이미 망가져 버렸다"며 "근거 없는 증원 정책을 내려놓아야 한국 의료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류세민 강원대 의과대학장은 기존 49명이던 해부학 실습을 내년 140명까지 해야 하는 상황을 짚으며 "실습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요청은 반영이 안 되는 등 학생 수가 3배 늘어나는 데 대해 실질적인 대안이 없어 교육이 원만히 돌아갈지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증원이 아니라면 강원도의 의사 부족 문제 해결은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의료진들은 수도권과 비교해 환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의사를 많이 뽑지 못하는 구조라고 짚었다.
또 지역에서 원하는 숙련된 의사가 부족할 뿐 의사 자체가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한 의료진은 "물론 필수 의료를 담당할 의사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의 사정을 볼 때는 그렇지 않다"며 "의사의 수를 늘릴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을 담당하는 의사들에 대한 보상을 통해 의대생들이 이 분야로 흡수될 수 있도록 해야 의료의 질이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들은 의료정책에 대한 결정 과정에서 의료계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황당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더불어 유윤종 의학과장은 "지금의 의료정책, 의료 개혁 자체가 의료계를 떠나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며 "의사를 의료 계획의 적으로 놔두지 말고 의료 개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존중해달라"고 말했다.
류 학장은 "정부에서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면 논의할 수 있다고 하지만,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안을 먼저 제시한 건 정부"라며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원 측은 최근 응급의료센터 성인 야간 진료를 무기한 중단한 이후 처음 맞는 명절 연휴인 만큼 진료 제한으로 인해 환자에 피해가 없도록 조치하겠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
taeta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12 15:2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