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청명주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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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신종근 전시기획자.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청명

청명

출처 한국세시풍속사전

청명주는 24절기 중 하나인 '청명'(淸明)에 담그는 술이다.

청명은 양력으로 4월 5~6일이며 1년 중 가장 맑은 날을 의미한다. 봄 밭갈이를 하면서 한해의 농사를 준비하기 시작하는 날이며 그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날이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생명이 움트는 시기이다.

구한말 1830년경에 실학자 최한기가 저술한 농업기술서 '농정회요'(農政會要)에 "술을 빚을 때는 물이 맑고 달아야 하는데 청명이나 곡우 때 물로 빚으면 맛과 색이 특히 좋다."고 쓰여있다.

실학자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나는 평생 청명주를 가장 좋아하며, 혹시나 잊어버릴까 해서 청명주의 양조 방법을 기록해 둔다."라며 청명주를 최고 술로 꼽았다.

청명주는 전국 곳곳에서 빚었지만, 현재는 충북 충주의 '충주 청명주'와 전북 정읍의 '한영석 청명주'가 있다.

청명주는 보통명사이며 술의 종류 중 하나이다.

충주 청명주

충주 청명주

충주시 제공

누구나 청명주라는 술 이름을 사용할 수 있어 '충주 청명주', '한영석 청명주'라고 구체적인 이름을 쓴다.

1993년 충북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중원 청명주'는 현재는 '충주 청명주'로 이름이 바뀌어 전해지고 있다.

충주의 창동리에서 대대로 거주한 김해김씨 문중의 가양주로 유명하며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간요법서 '향전록'(鄕傳錄)에 그 제조법이 기록돼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은 자신이 쓴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청명주변증설'에서 청명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술은 우리나라 금환(金還)사람만이 만들 수 있으니 '금탄'의 물이 아니면 이룰 수 없고 다른 지방에서는 모방해도 이와 같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금환(금탄)이 지금의 중원당이 위치한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보러 가는 경상도 선비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충주에서 배를 타거나 노은과 장호원을 거쳐 한양으로 가기도 해 자연히 먼 길 떠나는 나그네들이 목을 축이기 위해 청명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청명주는 머리를 맑고 밝게 하는 효능이 있어 청명주를 마시고 과거시험을 본 선비들이 많이 과거에 급제했다고 하며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했다고 한다.

'충주 청명주'는 일제강점기에 역시나 그 맥이 끊겼지만 향전록 등 고문헌을 통해 김영기 명인(작고)이 복원했고 현재는 그 아들인 김영섭 중원당 대표가 전수자로서 청명주를 빚고 있다.

약주의 교과서로 불리는 충주 청명주는 2022년 우리술 품평회 대통령상을 받았고 '2023 한·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의 공식 만찬주로도 선정됐다.

비교적 최근인 2022년에 출시된 '한영석 청명주'도 청명주의 계보를 잇고 있다.

전북 정읍에 위치한 한영석 발효연구소의 한영석 소장은 40대 초 이른 나이에 척수염을 앓아 병에 좋다는 발효식초를 공부하다 술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한영석 소장

한영석 소장

김진방 기자

2020년에 국내 첫 전통 누룩 명인으로 지정된 한 명인은 원래는 술을 직접 빚기보다는 전통 누룩을 양조장에 공급하는 일을 하려 했다.

하지만 양조장은 전통 누룩을 찾지 않았고 현대식으로 변화된 누룩이나 일본식 누룩인 '입국'으로 술을 빚었다. 전통 누룩으로 술을 빚으면 누룩 향이 강하게 나서 소비자들이 싫어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한 소장은 전통 누룩으로 술을 빚어야 명주가 나온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술을 빚었고 자신이 만든 누룩으로 청명주를 만들어 세상에 선보였다.

한영석 청명주의 특징 중 하나는 술을 빚을 때마다 재료는 같지만, 누룩은 다른 누룩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술을 빚는 순서에 따라 '배치 1', '배치 2', '배치 3' 등으로 구분해서 라벨링을 한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예를 들어 '배치 1'은 쌀누룩, '배치 2'는 향미주국, '배치 3'은 녹두국을 사용했고 각 '배치'별로 6천병 한정 생산해 그 희소성을 더 높였으며 현재 14 배치까지 출시했다.

한영석 청명주

한영석 청명주

김진방 기자

두 청명주의 빚는 방법이나 재료는 별 차이가 없다. 둘 다 찹쌀을 사용하며 누룩만을 넣어 빚는다. 다른 점은 '충주 청명주'는 현대식 누룩을 사용하고 17도이며 '한영석 청명주'는 직접 만든 전통 누룩을 사용하며 13.8도이다.

김영섭 대표는 전통주의 술맛은 누룩보다는 재료와 물의 비율, 발효 온도 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한 소장은 누룩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실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청명주의 또 다른 매력은 산미다.

둘 다 매력적인 산미를 자랑하지만 서로 조금은 다른 산미다.

'충주 청명주'는 단맛과 어우러지는 산미이고 '한영석 청명주'는 가볍게 왔다가는 짧은 산미이다.

지금의 청명주는 아무 때나 마실 수 있는 술이다.

그리고 두 청명주의 맛은 우리 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청명이 지난 지 한참이지만 이번 추석에 올해의 대풍을 기원하며 청명주를 조상님께 올려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14 11:3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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