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채라도 보유하면 대출 불가…KB·우리은행 9일부터·케뱅 당장 시행
이복현 강한규제·실수요보호 동시 강조…은행권 "조이라는건지 풀라는건지"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가계대출 급증세를 꺾기 위해 은행 등 금융권이 단순히 대출 한도·만기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집을 이미 가진 사람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자체를 막기 시작했다.
더구나 가장 실수요에 가까운 전세자금대출까지 받기 어려워지면서, 금융소비자들의 불만이 계속 커지고 있다.
특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세게 개입할 것"이라며 대출 억제를 강도 높게 압박했다가, '실수요자 보호'를 역설하는 등 오락가락 발언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가계대출을 조이라는 건지 풀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 다주택자 뿐 아니라 1주택자도 제한…이사 등 실수요자 보호 조치도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내부 회의를 거쳐 오는 9일부터 1주택 세대의 수도권 주택 추가 구입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제한하기로 했다. 앞서 7월 29일 이후 다주택자(2주택 이상)에게 주택구입자금 신규 대출을 막아왔는데, 이제 규제 대상을 1주택자까지 넓힌 셈이다.
아울러 KB국민은행은 같은 날부터 신용대출도 연소득 이내 범위에서만 내주기로 했다.
앞서 발표한 대로 우리은행 역시 9일부터 주택 보유자에게 서울 등 수도권 주택을 추가 구입하는 데 대출을 내주지 않는다. 서울 등 수도권 내 전세자금대출도 전 세대원 모두 주택을 보유하지 않은 무주택자만 받을 수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도 이날부터 구입 목적 아파트담보대출 취급 대상을 무주택자로 한정했다. 다만 1주택자가 기존 주택 처분을 서약하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은행권뿐 아니라 삼성생명도 3일부터 기존 주택 보유자에 대한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하고 있다.
금융권은 이처럼 집을 한 채만 가져도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을 내주지 않는 조치에 대해 공통적으로 "갭투자(전세 낀 주택 매입) 등 투기 대출 수요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대출 실수요자의 불만이 점차 고조되면서 규제 수위를 조절하거나 일부 예외 조항을 두는 분위기다.
일단 KB국민은행은 9일 이후라도 이사, 갈아타기 등 실수요자의 '기존 보유 주택 처분조건부' 주택담보대출은 허용하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전세 연장 또는 8일 이전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지급한 경우를 예외로 명시했다.
◇ 은행따라 다른 누더기 규제…오락가락 당국 메시지, 혼란 더 부추겨
금융당국의 명확한 지침이 없는 가운데 각 은행이 내부 판단으로 대출 규제를 쏟아내면서, 은행에 따라 같은 조건의 대출 여부마저 달라 금융소비자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단지 관련 은행 대출이 대표적 사례다.
KB국민·우리은행의 경우 둔촌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한 올림픽파크포레온 일반 분양자가 이미 잔금을 다 치렀다고 해도, 소유권 이전 등기가 안 돼 있다면 세입자에게 대출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NH농협은행은 대출 실행 전까지 임대인의 분양대금 완납이 확인되는 경우 임차인에 대해 전세자금 대출을 내주기로 했다.
1주택 보유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도 KB국민·우리·케이뱅크 등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아직 신한·하나·NH농협 등에서는 가능하다.
대출 관련 금융소비자들의 혼란과 불만이 커지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앞서 4일 열린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에서 "갭투자 등 투기수요 대출에 대한 관리 강화는 바람직하지만, 대출 실수요까지 제약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달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1주택인 분들도 자녀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주거를 얻어야 된다든가 다양한 경우에 따라서 투기 목적이 아닌 경우가 있을 것"이라며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들은 어려움이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언급으로 혼란만 더 가중되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제 금감원장의 발언으로 내부적으로는 다시 규제를 완화해야 하나 논의 중"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이나 금감원장이 최근 언론 등을 통해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 폭이 관리 수준 범위를 벗어났다거나 강한 개입 필요성을 느낀다고 밝히면서 은행은 거기에 맞춰 대출 제한의 수위를 높인 것"이라며 "여기에 실수요자에 대한 관리까지 동시에 주문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도대체 가계대출을 조여야 하는 건지 늘려야 하는 건지 당황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shk999@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09/05 17:24 송고